시인 두보(杜甫)는 봄이 되자 이백(李白)을 그리워하여 '춘일억이백(春日億李白)'이란 시를 읊었지만, 이 가을에 나는 자주 구양수(歐陽修)의 '추성부(秋聲賦)'를 읊조리게 된다. 그러나 중추절이 다가오면서 아무래도 가을달과 관련된 이백의 '파주문월(把酒問月)'이 제 운치가 아닐까 싶다. 서른 살의 이백은 장안의 종남산에서 이른바 주중팔선(酒中八仙)과 노닐며 달에게 애원했다. '원하노니 술잔을 들고 노래할 때/ 달빛이여, 이 술잔을 길이 비추어 다오.'

옛 말에 '달빛 아래서 선화(禪話)를 들으니 뜻이 더욱 아마득해지고, 달빛 아래서 칼에 대해 이야기하니 품은 마음이 더욱 진실해지며, 달빛 아래 시를 논하자 풍치가 더욱 그윽해지고, 달빛 아래 미인과 마주하니 정의가 더욱 도타워진다'고 했는데, 이 가을 가히 달빛이 유죄다. 봄 바람은 술과 같고 여름 바람은 차와 같으며, '가을 바람은 연기 그리고 생강이나 겨자와 같다(秋風如烟如薑芥)'고도 했으니, 어디 달뿐이랴. 가을엔 바람도 의미가 심장하다.

정월 대보름에는 모름지기 호방한 벗과 술을 마시고 단오에는 고운 벗과 잔을 나누며 칠석에는 운치 있는 벗과 술잔을 주고받지만, '추석에는 담박한 벗과 대작한다(中秋須酌淡友)'고 했던가. 그러나 '자신을 다스림에 마땅히 가을 기운을 띠어야 한다(律己宜帶秋氣)'는 말은 무엇인가? 나 자신에게는 가을 바람처럼 매섭고 엄격하게 대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고향에 가든 않든 추석에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 달빛 아래 술 몇 잔 마셨다 하여 취해 심신을 허수히 놀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만 송대(宋代) 마치원(馬致遠)의 '추사(秋思)' 한 수를 음미해 봄이 어떠한가. '저녁 빛은 서쪽 하늘에 떨어지는데(夕陽西下)/ 애끓는 이는 하늘 끝에 있어라(斷腸人在天涯).'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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