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선왕(齊宣王)이 맹자에게 대신(大臣)에 관해 물었다. 맹자는 "대신에는 귀척(貴戚) 즉 임금의 인척이 되는 대신이 있고, 또 이성(異姓) 즉 인척이 아닌 대신이 있습니다. 왕께서는 어느 대신에 관해 묻습니까?" 제선왕이 "귀척의 대신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자 맹자가 대답한다. "귀척들은 임금이 크게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간(諫)하고, 여러 번 간해도 듣지 않으면 임금을 바꿔 버립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발끈하여 얼굴빛이 싹 변했다.

맹자가 "왕께서 신에게 물으시니 신은 감히 바른 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고 하자 왕은 노여움을 잠시 가라앉히고 다시 물었다. "청컨대 이번에는 이성의 대신들에 관해서 듣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맹자는 다시 이렇게 대답한다. "이성 즉 임금의 인척이 아닌 대신들은 임금에게 잘못이 있으면 간하고, 여러 번 간해도 듣지 않으면 떠나갑니다."

'맹자'의 '만장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인척처럼 가까은 사람이 더 무섭다는 얘기로도 들리고, 진정한 신하라면 떠날 각오를 하고 윗사람에게 충간(忠諫)해아 한다는 말로도 들린다. 물론 진실로 임금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은 인척이 아니라 국익을 걱정하는 충신이란 얘기이다. 어떻든 윗사람을 모시는 방식은 이렇게 주종(主從)의 인륜적 정서적 관계가 서로 어떠하냐에 따라 다르게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당의 쇄신파들이 당정 개편을 주장하고, 인적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마치 이성 대신들 같은 초선 의원들이 권노갑 박지원 등 마치 귀척 대신 같은 이른바 대통령 측근들의 퇴진을 강력히 촉구하는 중이다. "여러 번 간해도 듣지 않으면 임금을 바꿔 버립니다" 쪽이 아니라 "여러 번 간해도 듣지 않으면 떠나갑니다"의 정황인 것 같다. 과연 어떻게 될까.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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