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면 부음 소식이 많이 들린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밤사이 주무시다가 돌아가시는 노인 돌연사도 많아졌다. 돌연사는 유가족들 입장에서는 슬픔이 배가 되는 죽음인데 연세가 드신 분들이나 가족 중 노인환자 치다꺼리가 깊어진 분들은 축복받은 죽음이라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잠자듯이 평온하게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는 것인데 유가족 입장에서는 별로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위로이다. 그러나 고령화로 요양원이 꼭 거쳐야 할 관문처럼 여겨지는 이 세태에서는 그런 부러움도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

갑자기 아들을 잃은 여인이 붓다를 찾아왔다. “부처님 제발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여인의 모습이 하도 간절해 붓다가 여인에게 물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 그럼 마을에 가서 쌀을 좀 얻어 오너라 단 죽은 사람이 없는 집에서 얻어 와야 하느니라” 여인은 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느냐는 마음으로 온 동네를 다니며 쌀을 구걸했다. 그러나 허탕쳤다.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모두 죽는 운명이니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인 것을 여인은 깨달았다.

사실 죽음에 대비해서 원하는 대로 죽을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죽음도 공부하듯이 준비할 것이다. 남은 가족들 힘들게 하지 않고 자신도 너무 고통받지 않고 지인과 마무리 잘하고 등의 웰다잉 축복을 누리고 싶은 것이 우리 범인들의 한결같은 마음이기에 하는 말이다. 바보가 되어 나를 잊어버리는 병 그래서 간호하는 식구들이 지치는 병 치매 같이 내 평생의 자존심마저 사라지게 하는 병은 결코 안 걸리고 싶은데 매복해 있다 찾아온다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으니 무력하기 짝이 없는 우리들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강조하셨던 법정스님이 즐겨 읽으셨다는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 )에는 ‘재미있는 인생을 보냈으므로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죽음을 늘 심리적 결재를 해 놓아야 한다’고 권유한다. 웰다잉의 축복을 간절히 소망하던, 그래서 지난달 그 축복 받고 갑자기 떠나신 시어머님이 생각난다. 더 잘해 드릴 걸...스산한 한해의 끝자락에 깊어지는 회한이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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