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수

삼척시립박물관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이 ‘폐광촌 살리기’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프랑스 북부의 폐광촌 랑스에 분관을 지어 12월 4일 개관한 것이다. 1986년 마지막 광산이 문을 닫으며 실업률이 16%까지 치솟았고 도시는 급속히 퇴락했다. 프랑스 정부는 폐광촌 부흥 프로젝트로 세계 최고의 박물관 루브르의 분관 유치를 계획했다. 2004년 사업추진을 확정하고 195억 달러를 투자해 8년 만에 개관한 것이다. 개관식에 프랑스 대통령이 참석했고, 고대 유물로부터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 낭만주의 거장 들라크루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품 등 200여 점을 선보였다. 이 분관은 첫 해에 70만 명을 유치하고 이후 매년 50만 명의 관람객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루브르박물관의 폐광촌 살리기는 스페인의 빌바오시(市)에서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하여 성공한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빌바오시는 풍부한 광물자원을 바탕으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2차 산업의 쇠락으로 1980년대 들어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산업구조 자체가 무너지고 25%를 웃도는 실업률과 오염된 생활환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다. 1990년 도시살리기를 고심하던 빌바오시는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재단이 유럽에 분관을 지을 계획이라는 정보를 듣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건축비용에다 부지 및 진입도로까지 완벽한 미술관을 제공하겠으니 구겐하임미술관의 이름만 내걸어달라는 조건이었다. 미술관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으나 시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미술관이냐, 시민들의 95%가 반대하고 연일 반대시위가 발생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시는 성공할 수 있다는 확고한 의지로 사업을 추진했다. 미술관 유치가 가능했던 것은 그전부터 네르비온 강을 중심으로 한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도시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바오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바스크 자치정부와 비스케이야 주정부가 각각 50%씩 자금을 분담했다. 각종 공장 폐수와 생활오수로 썩어가던 강을 살려내고, 그 주변에 미술관과 음악당, 체육시설을 짓자 떠났던 시민들이 돌아왔다. 미술관 개관 첫해(1997년 11월 ~ 1998년 10월) 135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고, 투자비용을 상쇄하고도 1천 100만 유로가 남는 성과를 얻었다. 그 후로도 매년 95만~105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온다. 죽어가던 도시가 과거보다 더 화려하게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디자인의 신화라 불리는 ‘빌바오 마스터플랜’의 제작자인 아레소 부시장은 도시혁신의 성공요인을 ‘빌바오시가 완전히 무너지고 황폐했기 때문에 시는 절박한 심정으로 생사를 걸고 도시혁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도시를 재건함에 있어 환경을 비롯한 시민들의 삶의 질과 더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너져버린 고용체계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였다고 한다.

자, 이제 우리나라의 폐광촌을 돌아보자.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를 단행한지 20년이 넘었는데 삶의 환경이 얼마나 쾌적해졌으며, 양질의 일자리는 또 얼마나 만들었는가. 지속가능한 도시부흥 프로젝트는 있는지. 지금까지 정부는 얼마간의 폐광대책비만 지원하고 책임을 다했다는 태도이다. 프랑스처럼 국가 주도로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분관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 걸까. 강원도 폐광지역 자치단체마다 크고 작은 관광기반시설을 확충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지만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만한 거점시설이 없는 상황이다.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과 집중적인 투자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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