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사생관과 애민정신

박경석 2013년 04월 18일 목요일
   
▲ 박경석

시인·예비역 육군준장

강원도 홍천에서 있었던 일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1965년 여름, 홍천 주둔 수도보병사단이 파월전투부대로 지정되자 본격적인 재편성에 들어갔다. 사단장을 비롯해 연대장에서 소대장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정예 요원으로 교체됐다. 나는 당시 진해 육군대학에서 영관장교들에게 전술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긴급 명령이 날아왔다. 파월부대 맹호 대대장 요원으로 선발됐으니 즉각 홍천의 수도사단에 도착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영광스럽게 해외 파병부대 지휘관으로 선발됐으니, 직업군인으로서는 그 이상의 보람이 없었다. 수도사단(채명신 소장)은 맹호부대로 호칭되면서 사단 전체가 맹훈련체제로 돌입했다. 정글전에 익숙하기 위한 고된 전투훈련이었다. 그 훈련과정에서 내가 지휘하는 대대 예하 중대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다. 중대장 강재구 대위가 수류탄 훈련장에서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에 의해 폭사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즉각 현장으로 달려갔다. 강재구 대위는 숨져 있었지만 나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강재구 대위의 복부가 파열된 것을 확인하고 사고 내용을 확인한 결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위대한 군인정신을 찾아낸 것이다. 많은 부하들 한가운데 수류탄이 날아가자 강재구 대위가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수류탄을 덮쳤다. 그 덕에 부하들은 단 한 사람 다치지 않았다. 나는 현장에서 이 위대한 군인정신을 대하며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 사실이 연대장과 사단장에 보고되자 뒤이어 철저한 현장 조사가 이뤄졌다. 조사 결과 내가 보고한 내용이 사실임이 확인되자 언론에 공개됐다. 이 보도에 접한 박정희 대통령은 장례식을 육군장으로 하고 태극무공훈장과 함께 육군소령으로 추서했다. 나는 대대 호칭을 강재구의 이름을 따 ‘재구대대(在求大隊)’ 로 상부에 승인을 요청했다. 국방부는 재구대대로 확정 발령했다.

재구대대는 월남전 제1진으로 참전하면서 강재구 대위의 위대한 군인정신에 감동한 전체 대대 장병이 혼연일체가 돼 전투에 임했고, 월남전 전 기간을 통해 제1진 재구대대가 최고의 무공을 기록, 가장 많은 무공훈장을 수훈한 대대로 전사에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고 강재구 소령의 위대한 희생 내막은 내가 쓴 원문 그대로 교과서에 올랐고,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최초의 군신(軍神)으로 추앙하게 되면서 동상 건립과 함께 재구상이 제정됐다. 강재구 소령은 1965년 10월 초 강원도 홍천 수류탄훈련장에서 숨졌지만, 그의 위대한 군인정신은 영원히 국민의 가슴 속에서 살아있을 것이다. 죽음을 초월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에 직면한다면 죽음의 선택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죽음으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은 살신구국(殺身救國)의 귀감으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있다.

군인의 사생관은 생명을 하찮게 버리라는 측면이 아니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값지고 영광된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조국을 위해, 국민을 위한 죽음의 의미가 사생관의 핵심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생관이 군인만이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 물음에 나는 ‘아니다’ 라고 확언한다. 모든 지각 있는 사람들은 ‘사생관’이 정립됐을때 목표에 도달하는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사생관은 강력한 의지의 확립이기 때문이다. 의지 없이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애민정신은 군인의 사생관과 상통한다.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삼국유사에 단군의 건국이념으로 명시돼 있다. 홍익인간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백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애민정신은 홍익인간의 실행을 위한 정신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문화면에서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거의 선진국에 다가서고 있다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애민정신의 고양이 필요하다고 나는 제언한다.

사리사욕을 억제하는 힘은 애민정신에서 파생된다. 더구나 한 조직을 리드해야 할 리더는 더욱이 애민정신이 중시된다. 사생관이 뚜렷하고 애민정신에 충만한 사회가 온다면 단군이래 최상의 선진국을 뽐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조국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끝으로 나의 젊은 시절 대부분을 강원도에 주둔한 보병사단의 지휘관으로 GOP, DMZ에서 보냈음을 밝힌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http://www.kado.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