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경험 기회 여전히 부족해
현장과 선험자 통한 정책 필요

▲ 춘천 서면 안보1리 주민들이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상여를 관람하고 있다.

얼마 전 춘천 서면 안보1리 주민들과 국립춘천박물관에 간적이 있다. 안보1리는 문화커뮤니티 금토가 마을의 부녀회와 노인회원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교육과는 다른, 지역주민의 생활경험과 마을역사를 문화자원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그래서 매주 한 번씩 마을의 오래된 이야기,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그림으로,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말이 교육이지, 자신들의 삶을 문화적 틀로 정리해내는 작업이고 우리는 그것을 도와드리는 것인데 생활에 바쁜 부녀회원들은 참여가 좀 부족하지만 노년층에서는 아주 즐겁게 이 시간에 참여하신다. 마을 이장님도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을 보이며 우리의 결과물들을 활용할 방안을 고민한다.

이 분들이 박물관에 간 것은 이 마을에 청풍부원군 묘소가 있고, 예전에는 그 마을에 보관되었던 상여가 박물관에 있기 때문이다. 마을 역사가 박물관에 있는 것이다.

중요민속문화재 120호인 이 상여는 그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있던 것이 복원작업을 거쳐 최근 새로운 모습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박물관에 상여를 보러 가자고 했더니 마을 어르신들은 처음에는 불평을 쏟아내셨다. 마을에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박물관에 가더니 상여가 다 망가졌다는 것이었다. 상여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모양새를 잃어가는 것일텐데 박물관에 갔기 때문에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박물관에서 낡은 상여를 보며 괴괴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던 나는 그분들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상여가 복원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분들을 설득해 박물관을 가게 되었는데, 우리가 새로 만난 상여는 아주 화사하게 웃는 새색시 같았다. 복원작업을 통해 아름다운 색깔로 단장한 상여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상여가 저렇게 예쁜 건가? 나도 상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지만 그 상여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 마을 어르신들은 더없이 기뻐하셨다. 다른 곳은 그럭저럭 보시던 분들이 상여를 참 오래 바라보며 한 분은 수첩을 꺼내 꼼꼼하게 상여를 그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이 참 진지해보였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이 마을 어르신들이 프로그램을 아주 잘 수용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아마 그동안에도 사군자 그리기, 노래교실 등 경로당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저런 문화경험이 많은 것이 중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화가 경험재라는 말들을 종종 하는데 그 말에 수긍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 이유는 그런 경험을 미처 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어찌보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데 그런 인식이 적다는 것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 때문이다.

우리 일상에서 보다 생활적이고 폭넓은 문화경험을 위해서는 조금 더 잘 짜여진 문화정책들이 필요하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한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프로그램이 손이 많이 가고 이에 따른 지원인력이 많아야 하는데 지원기관은 임의로 정한 틀에 맞춰 강사 수와 사용예산을 강제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선험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다양한 탄력이 필요한 문화현장을 안다면, 그리고 진정한 문화적 정책을 실천한다면 이런 갑, 을의 관계방식으로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지역 문화계에 여러 가지 화젯거리가 있다. 이런 일방적인 문화행정들에 논란이 분분한데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몇가지 문제들을 여러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외적으로는 조용하다. 그래서 알았다. ‘을이구나.’ 을의 침묵이 길지 만은 않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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