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숙

춘천보훈지청장

최근 한 케이블 방송사는 1994년도의 향수를 제공하는 드라마를 방영하며, 연일 시청률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응답하라 1994’라는 제목으로 20년 전의 서울을 재조명하고 당시 젊은이들의 문화를 재연하며 30~40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성공의 요인으로 꼽힌다. 시간을 훌쩍 뛰어 1904년의 대한민국을 재연한다면 어떨까? 일단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는 힘들 것이다. 그 당시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분들은 이미 다 돌아가셨기 때문이고, 역사책이나 박물관에서나 그 시대의 기억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1904년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는 시기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 정부를 무력으로 압박하며 강제적인 협약의 체결을 강요했고, 1904년 한일의정서와 1차 한일협약,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실질적인 지배에 들어갔다. 이후 1910년 경술국치라 불리는 합병조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일제강점기가 시작된다.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러했듯, 일본 역시 자신들의 우월한 문화를 통해 식민지를 교화시키겠다는 명분론을 내세웠지만, 누구도 우리 민족이 일본보다 열등하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본에게 당한 치욕은 전국에 분노로 일어났다. 선비, 학자, 농민, 군인, 백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들이 일본의 치욕을 되갚겠다는 분노로 스스로 군대를 조직하고 일제에 저항했다. 국내에서 시작된 저항운동은 일제의 탄압에 쫓겨 중국, 러시아 등 생면부지의 타국에서도 이어졌다. 타국의 땅을 일구면서도, 학교를 만들고 군사를 조직했고, 아버지가 순국하면 그 아들이 아버지의 총을 들고 일어나, 독립의 날까지 저항운동은 멈추지 않고 지속됐다. 목숨을 내놓을망정 일제의 식민지인으로 살지 않겠다는 순국선열들의 결연한 자부심과 기개,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말겠다는 나라사랑정신은 끝내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뤄냈다. 또한 독립 이후에도 선열들의 이러한 정신은 대한민국 성장의 동력이 되었고, 우리는 수많은 역경을 물리치며,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 세계 중심의 국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2013년 11월 17일은 일요일이다. 이날은 그 분위기를 틈타 전국적으로 비나 눈이 올 예정이라고 한다. 온 국민의 추모의 마음이 모아지는 11월 17일은 바로 순국선열의 날이다. 이날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치신 선열들의 희생정신과 나라사랑정신을 다시금 불러 우리의 마음속에 귀하게 모시는 날이다. 순국선열들의 희생으로 지킨 대한민국을 더욱 강한 나라로, 더욱 평화로운 나라로, 다시는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후손들에게 물려주겠다고, 국민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선열들의 영전에 응답해야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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