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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지방행정 외길을 마감하며…

전주수 2013년 12월 20일 금요일
   
▲ 전주수

전 춘천부시장

존재가 본질에 우선한다!

이는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여기서 존재란 있는 모습 그 자체이고 본질이란 존재가 만들어진 목적이다. 실제 식탁, 의자, 수저, 그릇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만들어진 목적(본질)이 있다. 식탁은 음식을 놓기 위함이요, 의자는 앉기 위함이다. 수저는 편히 먹기 위함이요, 그릇은 담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물들은 그 목적(본질) 때문에 세상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도 다른 사물들처럼 무슨 목적이 있으니까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누구도 선뜻 대답할 수 없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존재가 본질에 우선한다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즉, 인간은 먼저 세상에 던져지고 그 다음 목적(본질)을 찾아간다는 뜻이다.

37년간 강원도청과 춘천시청에서 오직 공직생활만 해왔다. 최근 3년 3개월간은 춘천시 부시장으로 재직해 오다 명예 퇴임식을 갖게 됐다. 그 무수의 세월 동안 오직 한 길을 달려왔고 이제 그 끝자락에 서 있다. 만감이 교차하는 지금, 인생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또 왜 살고 있는 것일까? 사르트르가 말했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나에게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본질이 ‘자유’에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37년간의 공직생활은 본질에서 거의 벗어난 삶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나의 공직생활은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7급 행정직 공개채용 시험으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 이어진 공무원 생활은 그야말로 ‘야근’과의 싸움이었고, 자신과 가족조차 직장의 요구에 따라 희생해야 하는 것만을 미덕으로 알고 살았던 세대다. 공무원이 무슨 야근을 그리 했을까 싶겠지만, 나는 대부분 핵심부서다 격무부서다 라고 소문난 기획부서와 지방과라는 부서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늘 야근을 피할 수가 없었다. 수십년간 계속되는 야근에 시달려야 했고 휴일에도 근무했고 90년대까지는 여름휴가조차 생각도 못했다. 심지어 가족들까지 외면하고 건강까지 잃어가면서도 많은 지역발전 전략들을 창출했고 또 열정으로 추진한 성과와 성취감들로 항상 유능한 인물로 평가되었던 자부심 하나로 몸 바쳐 일 했던 그 시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떻게 견디었나 싶을 정도로 대견하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바보스럽게 희생할 필요는 없었는데 하는 답답함과 후회로 한탄하기도 한다.

이제 그동안 몸담았던 공직, 진저리 쳐지도록 지겹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정들었던 공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울컥해지는 것은 왜일까. 부끄럽지만 나는 감히 그것이 나의 자부심이 던져준 감동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지난 37년 동안 나는 강원도청과 춘천시청을 번갈아가며 오직 강원도와 춘천시를 위해 몸 바쳐 일했다.

대표적인 성과는 춘천에 바이오, 애니메이션, ICT산업을 창출해낸 ‘하이테크벤처타운’ 전략을 실증적으로 성취해 낸 것이다. 물론 당시에 선견지명이 계셨던 시장님께서 나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총괄 지휘권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고, 내 몸을 아끼지 않고 모든 열정을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춘천지역에 대한 ‘사랑’의 바탕과 내 족적을 남기겠다는 성취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명예퇴직을 앞둔 지금, 많은 아쉬움도 남지만 한편 지난 37년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것은 첫째로 내가 진정으로 춘천을 사랑했기 때문에 내가 좋아서 춘천을 위하는 일에 몰입 할 수 있었고, 둘째로 그 지나간 시간마다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일 것 같다.

미력이나마 37년의 공직생활이 의미 있는 삶이었다고 정리하면서, 지금 나는 또 새로운 감동을 느낀다. 드디어 나의 존재 이유, 본질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춘천을 사랑하는 것이요, 춘천을 더욱 살 맛 나게 키우는 일이다. 이제 긴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떠나지만, 나의 본질, 즉 춘천을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히 잊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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