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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출가재일에 생각하다

편백운 2014년 02월 18일 화요일
   
▲ 편백운

석왕사 주지

먼저 출가란 “번뇌에 얽매인 속세의 생활을 버리고 성자의 생활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불교는 싯달타라는 한 청년이 세속적인 생활에 대한 회의를 느끼시고 번뇌에 얽힌 속세의 생활을 버리고 성자의 길을 택한 출가재일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아함경’에 보면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출가동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출가한 것은 병듦과 늙음과 죽음이 없고 근심, 걱정, 번뇌와 두려움이 없는 가장 안온한 삶을 얻기 위해서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싯달타라는 한 청년이 왕자의 지위도 버리고 출가를 결행하게 된 동기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출가는 가족이나 사회를 등지고 산속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기 위한 현실도피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과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법을 터득하기 위한 한 방법이란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출가는 한낱 가출에 불과한 무책임한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와 반대로 가정을 떠나지 않더라도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한 삶의 길을 터득할 수만 있다면 이는 부처님의 출가정신을 계승하는 일이 됩니다. 싯달타는 출가하신 후 피나는 정진을 통해서 부처님이 되심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처님의 출가정신을 이어받은 길은 우리 자신도 생로병사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고 이상적인 삶을 사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출가는 형식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불자들이 부처님처럼 가정을 버리고 출가를 할 수는 없습니다. ‘비화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삭발하는 것만으로는 출가라 하지 않는다. 대정진을 일으켜 중생의 일체번뇌를 제거하려 할때 이를 출가라 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이 출가절을 뜻깊은 날이 되게 하는 길은 생업을 버리고 입산수도 하는 외형적인 출가를 하는 일이 아니라 진실로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구제해야겠다는 대비심을 일으키는 일이요, 그에 못지 않게 스스로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한 삶의 길을 터득하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출가란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불하시기 이전에는 아무도 생로병사의 해결 행복한 삶의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부득이 외형적인 출가를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셨지만 우리는 이미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지해서 외형적인 출가를 하지 않고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이 뜻대로 안되고 또 인생에 대해서 회의를 느낀다거나 할 때는 곧잘 “머리깎고 스님이나 되어볼까?”라고들 합니다만 사실은 외형적인 출가도 말처럼 용이한 일이 아니고 스님 노릇이라는 것이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편한 것만도 아닙니다.



원효스님은 이에 대해서 ‘발심수행장’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수불욕 귀산수도(人誰不欲 歸山修道)리요마는 이위부진(而爲不進)은 애욕소전(愛欲所纏)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누군들 산에 가서 도 닦기를 싫어하리요마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애욕속에 얽히었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연이불귀산수수심(然而不歸山藪修心)이나 수자신력(隨自身力)하야 불사선행(不捨善行)이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산에 들어가서 수도를 못할지라도 자기의 능력에 알맞게 선행을 행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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