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룡

손해보험협회 수도권본부장

고속도로에서 한 차량이 쏜살같이 달려 1차선을 달리고 있던 다른 차량의 앞을 막고는 급정거를 한다. 그 차량의 운전자는 성난 표정으로 문을 박차고 나와 뒤따르던 차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의기양양하게 걸어간다. 그 순간 그 뒤를 따르던 또 다른 차량이 서있는 차량을 추돌하면서 고속도로는 한순간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다. 어느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 아니다. 2013년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실제 있었던 장면이다. 지난해에는 차선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삼단봉을 가지고 상대방 차의 유리창을 수차례 내리치고 위협한 사례도 있었다.

난폭운전이 운전을 거칠게 해 불특정 다수에게 불쾌감 또는 위협을 주는 행위라면 사례와 같은 보복운전은 고의로 자동차를 이용해 특정인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난폭운전 보다는 보복운전이 훨씬 더 사고가 날 확률도 높고 사고 시 그 피해 또한 크다. 이런 도로위의 무법자 같은 보복 운전이 매년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한국교통사고조사협의회에 따르면 매년 평균 1600건 이상의 보복운전 사례가 발생한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최근 운전자 1000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10명의 운전자 중에서 4명이 보복운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전체 절반 이상은 운전 중 상대차로부터 욕설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전체 운전자 중 절반 이상이 보복운전을 당하거나 최소한 욕설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하니 나 아닌 다른 운전자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럼 이런 보복운전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이유 중에도 단연 으뜸인 것은 같은 시공을 공유하는 운전자 상호간의 소통의 부재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잘못된 운전습관이나 서로 다른 운전 습관을 이해하지 못하여 일어나는 일종의 불협화음인 것이다. 내 기준에서 판단하니 무조건 상대편의 운전이 잘못된 것이고 그로 인해 내가 피해를 봤으니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보상심리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러다 보니 익명성이 보장되는 차안에서의 분노 표출은 끼어들기 같은 아주 사소한 원인 하나로도 불씨가 되어 피어오르고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화신이 되어 보복이라는 돌출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순간 나는 정의의 사자이고 끼어든 차는 응징해야 할 악의 상징으로 행위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보복운전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재밌는 조사결과도 있다. 실제로 보복운전의 가해경험이 있는 운전자들을 상대로 설문을 하였더니 10명중 8명은 상대 운전자가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다면 절대 보복운전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상대 운전자와의 소통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보복운전의 80% 이상이 없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니 절대적으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최근 보복운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경찰에서는 보복 운전에 대한 엄중 처벌을 경고하고 도로교통법이 아닌 폭력행위처벌법에 따라 강력하게 조치하겠다고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도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바람직한 대응이라고 보여 진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운전자 서로 간에 개인의 습관 차이를 이해해주고 소통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보복운전 문제는 봄날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함께 사용하는 도로위에서 서로 상대에게 미안하다는 뜻으로 창을 내리고 짤막한 수신호 한번이나 비상등을 잠시 깜박이는 도로위의 무언의 법칙을 기억하고 실천한다면 우리의 도로는 항상 양보와 배려가 넘쳐나는 정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도로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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