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과 ‘송로버섯’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두 단어를 조합한 풍자가 폭염을 눌러버릴 기세. 물론 그 중심엔 박 대통령이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를 초청한 청와대 오찬에 송로버섯이, 8.15경축사에 헬조선이 등장했으니 자업자득. 두 말이 갖는 의미는 극적으로 대비된다. ‘헬조선’은 어둠과 고통, 절망을, ‘송로버섯’은 호화로운 귀족잔치를 연상시킨다. 두 말이 겹쳐지며 우리사회는 또다시 깊은 내상을 입었다. 국민 가슴에 누가 화살을 쏘았나?

8000자에 이르는 8.15 경축사를 읽어보자. 박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 ‘떼법문화 만연’,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들로 사회를 혼란시키는 일’ 등이 난무한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한 차원 높은 도약을 이뤄내자’고 당부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 공동체를 위해 뭘 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약속’과 ‘계획’이 빠졌다. 19C 아날로그 버전!

‘헬조선’은 지옥을 뜻하는 ‘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대한민국이 살기 힘들고 희망이 없음을 풍자하는 말이다. 얼마 전 모 방송은 ‘헬조선과 게임의 법칙, 개천에서 용이 날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국가를 향한 청춘들의 분노’를 심층 분석해 화제를 모았다.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더 이상 ‘노력하면 잘 살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헬조선’, ‘극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같은 언어에 천착한다. 왜 일까. 취직, 알바, 학업, 스펙을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흙수저가 금수저로 변하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청년실업률 12.5%’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곱씹어야 한다. ‘개천의 용’이 사라진 시대. 계층 이동이 중단되고, 가난이 대물림 되는 세상에선 희망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 ‘하면 된다’고 아무리 우겨봤자 헛일이다. ‘흙수저들의 눈물’을 닦아줄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필요하다. 500g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송로버섯과 바닷가재, 훈제연어, 캐비아 샐러드, 샥스핀 찜, 한우갈비가 어우러진 호화판 오찬을 즐기면서 ‘민생’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월 88만원 짜리 삶이 즐비한 세상인데….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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