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원
소설가

요즘은 작품 쓰는 일 때문에 자주 가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거의 주말마다 고향에 갔다.수년 전 그곳에 강원도 바우길 19개 구간을 이어놓고,그 길을 주말마다 걸었다.지금도 바우길은 강릉시내에 바우길을 걸으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침실 안에 1인침대에서 잠을 자는 여행자 숙박 중심의 편의시설이다.그러나 초기엔 대관령 산속에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하여 부근에 마땅히 식사할 데가 없어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과 저녁 식사를 제공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가 그리워지는 것은 그곳의 독특한 식단 때문이다.미리 메뉴표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집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식단을 운영했다 그런 메뉴가 어디에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나는 그때 그것을 ‘어머니의 식단’이라고 불렀다.

자식들이 먹는 아침과 저녁을 풍족하게 차려내는 것도 어머니의 식단이지만,때로는 뭔가 한 가지가 빠진 듯한,그래서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소박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머니의 식단이다.소박한데도 아주 잘 먹은 느낌,무엇보다 손맛의 정성으로 대접받은 느낌,저마다 아침 시간에 바쁘거나 저녁 시간에 쫓기는 도시의 가정에서는 오히려 쉽게 차려 먹기 어려운 집밥이 바로 어머니의 식단이다.

나는 아직도 고향에 가면 그곳에 여든여덟 되신 어머니가 계신다.나만의 우리집이 아니라 모든 형제들의 우리집인 고향집에 가면 지금도 늙으신 어머니가 반가이 우리의 밥을 지어주신다.나는 이제까지 어머니가 해주신 많고도 많은 음식 중에 꼭 한 가지를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이 있다.그것은 바로 강원도 감자떡이다.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감자떡이 아니라 진짝 감자를 온 여름 내내 단지에 넣어 썩히고 삭혀서 은빛 가루처럼 얻어낸 말 그대로 감자가루로 만든 감자떡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요즘 철이 바로 첫 감자가루가 나올 때이다.

그 중에서도 강릉말로 ‘썩감재갈기’라고 부르는,밭에서부터 썩은 감자를 단지에 삭혀서 얻어낸 갈색빛의 ‘썩은 감자가루’로 만든,그래서 도시 사람들 입에는 조금은 콤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썩감재갈기’의 감자떡을 잊을 수도 없고,또 늘 그리운 것이다.한 여름 밭에서 막 따온 풋강낭콩을 팥소로 넣어 찐 감자떡을 먹어본 지도 참 오래 되는 것 같다.

자주 먹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다.이제 어머니의 연세도 아흔히 다 되셔서 예전 같지 않기도 하지만,그보다 더 큰 이유는 예부터 우리집의 감자떡은 5남매나 되는 모든 형제들이 모였을 때 늘 해먹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나 혼자 집에 갔을 때는 그것이 먹고 싶다거나 해달라고 말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또 정작 명절이나 아버지 어머니의 생신 때 형제들이 다 모였을 때는 거기에 맞는 명절 음식과 생일음식을 먹게 되다 보니 어머니가 손수 쪄주시는 감자떡을 맛본 지가 벌써 10년이 넘는 것 같다.

예전에도 그것을 한여름에 밭에서 막따온 강낭콩을 넣어 쪄 먹었던 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도 아마 여름이라야 방학을 해서 모든 형제들이 모일 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또 우리가 모두 어른이 되었을 때는 여름휴가 때 형제들이 모두 모여 추억의 감자떡을 먹었던 것이다.곧 추석이 다가오는데 그때 형제들이 다 모여도 그때는 또 추석송편을 해먹느라 감자떡을 해먹을 수가 없다.그렇지만 언젠가 형제들 모두 우리가 자란 옛집 마당에 모였을 때 꼭 한번 어머니의 감자떡을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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