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서 경기 고양예고 1년

사흘째 설거지를 하던 아빠가 사라졌다.해도 해도 쌓이기만 하는 설거지 거리들의 부피를 늘려주려 부엌에 간 내가 발견했다.거품만 무성할 뿐,아무것도 없었다.



안방에는 리모컨을 뺏으면(엄마 안잔다.) 코까지 골며 잠들지 않는 엄마가 있다.엄마.일어나봐.아빠가 사라지고 거품만 남았어.

부엌에 선 엄마가 기함하며 아빠를 불렀다.미끄러운 바닥에도 미동 않는 지독한 엄마.엄마의 고함에 고막이 찢어질 때쯤 거품 속에서 아주 작아진 아빠가 나타났다.얼마나 녹은 거야.다섯 뼘도 안 되는 크기였다.



엄마.이 거품이 아빠였나봐.

설거지를 너무 많이 해서 녹아버렸다.

결혼할 때 아빠에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고 약속했던 과거의 엄마.

이제 여기엔 더러운 냄새를 풍기며 하품하는 현재의 이 밖에 없다.



나는 누구야?내 삶은 어디 있어?아주 작어져 앵앵대는 목소리로 아빠가 악을 썼다.아빠는 어느새 두 뼘만해 졌다.엄마가 손을 들고 위협했다.나는 익숙하게 자세를 낮췄다.



나는 대체 누구냐고!네 남편,얘 아빠 말고 나는 누구야?

고함에 결국 엄마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고무장갑을 아빠에게 던졌다.

아주 짧게 정적이 흘렀다.

당신의 이름을 찾는 목소리가 부엌에 남아 웅웅댔다.고무장갑을 걷어내자 아까보다 더 많아진 거품이 있었다.

여전히 설거지 거리는 늘어나고 있었고 부엌엔 나밖에 없었다.

아빠,아빠의 이름은 아빠야.

아빠이면서 아빠일 줄 모르는 아빠인 거품은 그대로 두고 부엌을 빠져나왔다.

아빠.수고해.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설거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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