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국정 혼란 부모 묏자리 흉지가 원인일까
조선 개국 이후 이어진 도읍 전도 논쟁
“풍수적 관점서 청와대 터는 명당” 주장
박정희 부부 묘소 동작동 최대 흉지

▲ A지점: 축석령 ① 연세대 ②경복궁 일대 ③태강릉 일대

우리 역사에 전쟁의 경우를 제외하면 요즘과 같이 혼란스러운 때가 있었을까 한다.혼란의 이유야 많겠지만,풍수가들이 떠올리는 것은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경복궁) 터에 대한 풍수적 상념이다.

우선 경복궁을 둘러싼 풍수논쟁의 기록을 살펴보려 한다.조선이 개국하자,도읍을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한 전도(奠都)논쟁이 있었다.이성계는 정도전의 의견을 채택하고 지금의 터에 경복궁을 지었다.세종 15년(1433),최양선이 경복궁은 길지가 아니고 가회동일대가 명당이라 주장을 한다.그러자 세종은 대신들에게 북악에 올라가 풍수를 살피도록 명했다.경복궁이 명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다수 의견이었고,세종도 직접 북악에 올라서 살핀 후에 명당이란 결론을 내렸다. 1612년(광해 4년),이의신은 임란과 반역적 변고가 계속 일어나는 것은 도성의 왕기(旺氣)가 쇠했기 때문이니 교하(交河)로 천도할 것을 주장하였다.

근래의 일부 풍수가들은 박정희 집권 18년 기간에 우리나라가 경제적 비약을 이룩한 것은 청와대 터가 명당이기 때문이란 주장을 하기도 한다.

명당의 여부는 다수결과 합리화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제 우선 서울의 지세에 대한 최장조(전 서울대교수)의 풍수적 견해를 들어보자.(<한국풍수의 재발견> 1993.3.6일,경향신문)

“백두산의 정기가 백두대간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다 철령부근에서 서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니 이것을 한북정맥(漢北正脈)이라 한다.다시 한북의 땅기운이 뭉쳐 북한산 연맥을 이루어 서울을 감싸 보호하고 거기서 나온 용맥이 진기융결(眞氣 融結)하여 북악을 이루니 이것이 서울의 주산(主山)이다.북악이 앞으로 품을 열어 사람을 맞을 준비를 마쳤으니 이곳이 바로 서울의 명당이 된다.그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터가 혈처(穴處)인데 그곳에는 경복궁이 건설되었다.”

필자는 서울로 들어오는 주맥(主脈)을 확인하기 위해 두 곳을 간산하였다.

첫째,축석령(A)에서 살펴보니,북한산으로 진행하는 맥로는 방맥(傍脈)이다.그래서 이 맥로의 출발점은 축석령으로 보아야 한다.한북정맥의 주맥(主脈)은 수락산 방향으로 진행하여,불암산을 거쳐 태강릉 일대의 넓은 지역에 넓은 명당판을 만드니,남한 최고의 터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둘째,북악산에서 확인해 보니,주 맥로는 인왕산 쪽으로 행도를 하며,고 정주영 회장 자택에 주혈을 맺고,그 방맥이 안산을 지나 연세대에서 대명당을 맺는다.북악에서는 경복궁 방향으로 낙맥(落脈)하지 않는다.청와대를 포함한 경복궁 일대가 자리가 될 수 없는 이유다.전도(奠都)논의에서 하륜이 주장한 무악천도론이 풍수적으로 정확했다는 생각이다.

#정회장 자택이 서울의 주혈이지만,혈처가 높은 곳에 자리하고,섹터가 협소하여 궁궐과 같은 건물을 수용할 수는 없는 곳이다.

▲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 묘소.동작동에서 최대의 흉지에 자리한다.

최장조의 주장을 계속 들어보자

“청와대 터의 상징성은 그곳이 살아 있는 사람의 삶터가 아니라 죽은 영혼의 영주처(永住處)이거나 신(神)의 거처라는 점이다.그 터에 사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풍수적 소응은 신적 권위를 부여 받고 있는 꼴이다.조선 총독들의 말로가 매우 좋지 않았다는 사실과 역대 대통령들이 그곳에서 신적 권위를 지니고 살다가,천도(天道)를 넘은 대가로 그 뒤끝이 좋지 않다는 것을 심각하게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조선총독을 지낸 자들의 말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역대 총독 중 가장 일찍 죽은 자가 68세이고,6대 총독은 89세 까지 장수했으며,6년간 조선총독을 지내면서 가장 악랄한 짓을 했던 미나미(南 次郞)도 82세까지 살았다.역대 대통령이 뒤끝이 안 좋았던 것은 대통령으로서 실정(失政) 또는 과도한 욕심이 빚어낸 결과일 뿐,청와대 터와는 무관하다.

그러면서 최창조는 대통령의 관저을 옮길 것과 그 터를 추천하기도 했다.

“(구)일해재단의 터(현,국제연구소,세종연구소 일대)는 총 20만평 부지로 대통령의 관저로 손색이 없다.현지에서 느낀 바로는 지기(地氣)가 상당히 순화되어 있었다.나직한 둔덕에 둘러싸인 평지이기 때문에 지금의 청와대 터와 같은 권위주의적 입지와는 거리가 멀고 민주화 시대에 알맞다.”

필자가 돌아본 구 일해재단 일대는 도처가 흉지에 불과한 곳이다.느낌이야 각자의 판단이니 그렇다 치자.평지에 자리한 터라서 권위주의적 입지가 아니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명,청 그리고 공산당 집권 이후 황제와 총서기가 거주했던 자금성과 중난하이(中南海)는 평지가 아니던가.그 평지의 터에 살면서 독재와 폭정을 일삼았던 지도자도 적지 않았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양택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건강과 업무의 효율에 불리한 영향을 주기는 한다.그러나 중요한 승부나 결정적인 사태는 양택의 영향이 아니라,부모 묘소의 영향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필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모택동이 적자생존의 민국시대와 장정(長征)을 포함한 만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천하를 통일한 것은,대명당에 모신 그의 증조할머니 주(周)씨와 조부(毛翼臣)의 풍수파워 덕분이다.그러나 집권 이후 폭정을 일삼고 인민의 삶을 피폐케 했던 것은 대흉지에 모신 그의 부모 묘소에 기인한다는 생각이다.

박근혜는 천하대지를 방불하는 그의 증조모 묘바람과 부친의 명성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부모님을 대흉지에 모시고 전국을 혼돈상태로 몰아놓았다.

#이명박의 부모 묘소도 대흉지에 걸렸다.그의 치세에 4대강을 비롯한 국고 탕진정책으로 중산층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선대를 대명당에 모셔서 최고의 권좌에까지 올랐는데,‘설령 부모를 흉지에 모셨다고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풍수에는 상쇄작용이란 것이 없다.좋으면 좋은대로 그 혈처의 역량만큼 길(吉)하게 작동하고,나쁘면 나쁜대로 그 흉지의 강도(强度)에 비례한 흉사가 발생한다.수 많은 현장에서 터득한 필자의 경험칙이다.

대통령의 선정과 실정에 청와대 터의 기운이 미치는 영향은 미호기미(微乎其微)일 뿐이다.
 

손건웅(孫健雄) 풍수유람가
 ·춘천고등학교·강원대학교 졸업
 ·네이버카페 ‘동강의 풍수유람’ 운영
 ·저서 ‘세상을 풍수로 보다’ 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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