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상처는 동족상잔의 6·25전쟁이다.일제 치하에서 가까스로 독립했건만,불과 5년만에 서로 죽고 죽였던 비극의 역사다.전쟁은 군인들의 희생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도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다.바로 ‘부역(附逆)’했다는 죄명으로,총살도 모자라 죽창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로 전쟁은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을 낳았다.
적의 침공으로 인해 적의 치하에서 적군에게 직·간접으로 도움을 제공해 아군에게 반역행위를 한 자를 부역자라고 한다.한국전쟁 이전 일제강점기에도 일제에 충성서약을 하고 침략자보다 더한 만행을 저지른 이들에 대해서도 부역자라고 불렀다.해방후 반민특위를 통해 이들을 단죄하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있었지만,그들은 이승만 정부에 의해 면죄부를 받고 권력자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3개월간의 북한치하에서 북한군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한 부역자들은 대거 검거돼 즉결처분 되는 등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국방부에 따르면 당시 친공산당 부역자로 15만 여명이 검거됐고,39만명의 자수자를 합해 55만 명에 이르렀다.북한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한국군에 협조한 이들에게는 무서운 처벌이 뒤따랐다.
근대에 이르러 부역자를 가장 엄격하게 처벌한 나라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의 프랑스다.나치에 협력했던 부역 혐의자 12만명을 재판에 회부했고,1만5000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했다.70년이 지난 지금도 부역자에 대한 프랑스 당국의 처벌은 진행형이다.이 같은 역사는 반역을 한 부역자들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다.특히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우리에게는 ‘부역자’라는 말 자체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해 일어난 촛불민심은 대통령의 퇴진뿐만 아니라 적폐해소를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이와 함께 권력의 편에 섰던 이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민심에 역행한 이들을 두고 ‘부역자’라고 규정하기도 한다.잘못된 체제를 바로잡기 위한 인적청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하지만 부역자라는 말 한마디에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죽임을 당했던 현대사를 돌아보면,‘부역자들’이란 말은 참으로 무시무시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chonn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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