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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만들기와 마을 사람 되기

김정섭 2017년 03월 28일 화요일
▲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아침 열 시가 넘은 시각에 귀촌한 어떤 이가 개 한 마리 데리고 마을 안길을 걷는다.여섯 시부터 나와 밭일을 하던 토박이 주민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다.흉을 보기 마련이다.“얼마 전에 이사 온 저이는 물색없게도 해가 중천에 뜬 시간에 개 끌고 어슬렁거리더라.” 이런 뒷담화를 전해 들은 당사자는 ‘개를 끌던 소를 끌던 그들에게 피해를 입힌 게 없는데 무슨 상관인가,남의 일 참견이 정말 당치도 않네’라며 발끈한다.반목은 사소한 데서 싹틀 때가 많다.이런 사건을 두고 쓸데없는 다툼이라고 간단히 넘길 수는 없다는 게 문제다.농촌 마을이 공동체로서 작동하는 한,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어느 정도의 관심,판단,걱정,조언 등의 개입은 피할 수 없다.남의 일에 참견함으로써 나와 남의 구분을 흐릿하게 하는 것,그런 게 바로 공동체다.
공동체는 좋게 말하면 상부상조하는 인간관계이고 나쁘게 말하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다.‘개 끌고 산책했다고 나무라는 건 지나친 일 아닌가?’라고 되물을 수 있다.그러나 누가 잘못했는가를 따지는 건 실익이 없다.다만 토박이 주민의 눈에 ‘개 끌고 마을길 산책한 것’이 경우 없는 행동으로 비치게 된 연유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농사철에 다들 바쁜데 산책하는 그 모습이 예의 없어 보인 건 아닐까?산책한 그 길이 수십 년 전 마을 사람들이 자기 땅을 무상으로 내어 놓고 오랫동안 쓸고 다져온 길이기 때문은 아닐까?마을 안길은 주민의 공동 소유인데 정서상 소유권은 공동 노동의 대가로만 주어지는 건 아닐까?
농촌 마을은 익명성 가득한 도시 거리와는 다른 장소다.자기가 사는 곳을 의미있는 장소로 만들려고 이웃과 의논하고 노동하는 ‘장소화(場所化)의 실천’은 얄팍하고,‘개인적 소비 실천’은 두텁다.지금,특히 도시에서,장소는 편익·비용을 따지는 ‘가성비’의 셈법으로만 다루어질 뿐이다.우리는 장소를 소비하며 의미를 부여할 뿐,장소를 만들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내가 살았던 충청남도 어느 마을에서 읍내로 이어지는 몇 킬로미터 신작로(新作路) 가에는 코스모스가 줄느런히 피어나곤 했다.그것은 일종의 공동체적 장소화의 기억이다.중학생 시절,마을 4-H 활동의 일환으로 4월 어느 날에 우리는 먼지 날리는 신작로를 따라 걸으며 하루종일 코스모스 모종을 심었다.귀찮았지만 ‘우리 집 일도 아닌데 이 일을 왜 해야 하는 거지?’라고 진지하게 따져 묻는 친구들은 없었다.여름에는 수동식 분무기를 짊어지고 집집마다 다니며 재래식 화장실에 살충제를 뿌렸다.일요일마다 아침 일찍 모여 마을 안길을 쓸었다.이런 활동은 우리에게 부과된 의무였지만 결국엔 마을에서 인정 받는 ‘자발적이고 착한 행동’으로 치환되었다.우리는 ‘귀찮기는 했지만,하고 보니 나름대로 마을에 기여하는 보람 있는 일’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마을 공동체에의 소속감을 확인했던 것이다.
원인은 다르지만,이제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공동체적 장소화의 실천은 드물다.농촌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터전을 공동의 노동과 협력으로 가꾸지 않을 때,그곳이 앞으로도 계속 의미 있는 장소로 남을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에서 나온다.핵심은,공동의 노동과 협력이야말로 사람들이 마을에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매체적 활동이라는 점이다.굳이 ‘매체적 활동’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어울려 노동하며 일상생활의 터전을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들 때 ‘나’와 ‘이웃’도 서로 물들며 함께 ‘마을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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