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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레마을 '김 유 정 역'

노화남 논설고문

2003년 03월 24일 월요일
 김유정은 경춘선이 개통되기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경기도 광주에 있는 다섯째 누이 집에서 병상영춘기(病床迎春記)를 쓰고 안회남에게 절규에 가까운 마지막 편지를 쓸 무렵 일제의 경춘철도주식회사가 벌이는 서울 성동~춘천간의 철도공사가 한창이었을 것이다. 만일 경춘선이 한 8년만 앞당겨 완공되었더라면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쓴 김유정의 작품들은 사뭇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실레마을에 철로가 깔리고 조그만 역사가 세워지면서 요란한 기적소리와 함께 기차가 들어서고 떠나는 장면이 그의 작품 곳곳에 나왔을 것이다.
 <산골의 가을은 왜 이리 고적할까! 앞뒤 울타리에서 부수수하고 떨잎은 진다. 바로 그것이 귀밑에서 들리는 듯 나즉나즉 속삭인다. 더욱 몹쓸 건 물소리 골을 휘돌아 맑은 샘은 흘러내리고 야릇하게도 음률을 읊는다. 퐁퐁퐁, 쪼록 퐁> '산골 나그네'에서 산골의 가을 밤을 묘사한 부분에 기적소리나 열차의 쇠바퀴 구르는 소리가 끼어들었다면 소설의 분위기는 물론 내용도 달라졌지싶다. '가을'에서 소장수 황거풍에게 오십원 받고 아내를 팔아먹은 조복만이가 아내와 이별하는 장면도 고갯마루가 아니라 산남역 플랫폼으로 잡았을지도 모른다. '산골'에서도 서울로 공부하러 간 도련님을 기다리는 이쁜이는 늙은 잣나무 밑에서 먼 하늘만 바라보지 않고 텅빈 간이역 대합실에 쪼그리고 앉아 멀리 팔미리 쪽에서 기적소리가 나길 기다렸을 것이다.
 김유정이 스물아홉 한창나이로 세상을 버린 다음 다음해(1939) 실레마을에 기차가 들어왔다. 우악스럽게 생긴 화차 정수리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고 정신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기적소리를 내지르며 길고긴 몸뚱어리를 이끌고 온 기차가 신남역에 멈출 때 실레마을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을 터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정겨운 마을 이름 실레나 증리가 기차역 이름 따라 신남으로 서서히 바뀌고 신남역이 마을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정착되면서 60년 세월이 흘러갔다. 강산이 바뀌어도 여섯 번이나 바뀐 세월, 지금 지도엔 신남이란 지역명칭이 없다.
 춘천지역의 행정구역 명칭은 춘천부(府)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이름을 붙였었다. 지금의 동면은 춘천부 동산(東山) 밖이니 동산외면(東山外面), 남면은 춘천부 남산 바깥 지역이라 남산외면, 서면은 춘천서쪽이어서 서상면 서하면 하는 식이었다. 실레마을이 속한 지금의 신동면은 춘천부 남쪽에 위치해 남부내면(南府內面)으로 원래 마삼내 송암 칠전 퇴계리 등 9개리를 두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팔미 증리 혈동의 3개 리와 부내면 약사원리를 병합해 신남면이 되었다. 1939년 다시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퇴계리가 춘천읍으로 넘어가고 거두 신촌 고은 사암 학곡 등 5개 리와 의암리를 편입해 신동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신남면이란 명칭이 사라진 지 60년이 넘은 것이다.
 1930년대 한국 단편소설의 새로운 지경을 개척한 작가 김유정이 고향마을 실레에 돌아와 야학을 열고 농촌운동을 펼친 것은 그가 22세 되던 1930년부터 25세까지(1933) 3년 남짓한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그는 실레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소설의 소재와 등장인물들을 그의 머리 속에 차곡차곡 저장했던 것이다.
 서울 누이집에 얹혀 살며 그는 실레마을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주옥같은 단편소설을 써냈고 마침내 한국 단편문학의 화려한 금자탑을 쌓아놓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춘천의 이름을 빛내고 춘천 사람들에게 긍지를 심어주는 자랑스런 인물로 실레마을에 부활했다. 그의 생가가 복원되어 김유정 문학촌이 세워지고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실레마을은 이제 김유정의 마을로 널리 알려졌다.
 실레마을 신남역 이름을 김유정역으로 바꾸자는 지역 문인들과 문화예술계 사람들의 목소리를 춘천시가 수렴해 드디어 철도청의 내락을 받았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갑다. 김유정과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김유정역에서 내려 실레마을 김유정 작품 속으로 흠뻑 빠져들도록 마을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지역 주민과 자치단체 행정의 몫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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