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식이 두마리치킨 최호식회장의 성추행 영상으로 시끄럽다.성적 쾌락에 일생 쌓아올린 것을 일순간에 무너뜨리다니 실수도 그런 실수가 없다.근데 그 기사를 보는 순간 홍상수감독이 언뜻 떠오른다.내 눈에는 홍상수감독의 스캔들도 최회장 일탈과 다름없는 맥락의 비도덕에 불과한 까닭이다.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는 세기의 로맨스 장본인인 것처럼 커플링을 끼고 나와 서로 사랑한다고 기자회견을 했다.지난번에는 담배를 피우는 그들 사진이 보도됐는데 사진 속 홍감독 입가에는 담배를 물었는데도 미소가 흘러나왔다.예술을 빌미로 떳떳함을 가장하는 그들의 태도가 한 없이 아내들의 화를 자극한다.그들을 보고있으면 유명인은 자신의 부도덕함을 저렇게 포장하면서 면죄부를 얻는 것인가 비분강개하게 된다.

엘리너 루스벨트는 미국 대공황을 이겨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내이다.‘인권의 어머니’로 불리우는 그녀는 지금도 힐러리를 비롯 많은 여성 지도자들의 롤모델이다.저서 강연 컬럼 등 탁월한 능력의 그녀였지만 그녀는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바로 남편 프랭클린의 외도때문이었다.사망한 엘리너 루스벨트의 침대옆에는 버지니아 무어의 시 ‘프시케’와 숫자 ‘1918’이 적힌 종이가 놓여 있었다.그 시는 ‘믿었던 영혼은 기만당하고...’로 시작한다.그녀가 써놓았던 1918은 남편의 외도를 알게된 바로 그 해를 의미한다.그녀가 시 프시케와 1918을 남겼다는 사실은 배우자의 외도는 다 내려놓는 죽음에서 조차 내려 놓을 수 없는 상처라는 사실을 말해준다.혼인 속 배우자의 일탈은 상쇄가 불가능한 고통인 것이다.

별 상관없는데 홍상수 김민희를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솔직히 홍감독 정도의 연배이면 재미없는 부부(?)가 정상적인 부부일 수 있다. 김광균의 시 ‘목상(木像)’의 한귀절 ‘집에는 노처(老妻)가 있다 노처(老妻)와 나는 마주 앉아 할말이 없다’가 보편적 그림일 수 있다는 말이다.이 그림이 지루해 새로움을 찾겠다면 보다 도덕적으로 온당한 과정을 택했어야 마땅하다.단어 ‘사랑’은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말할 상황이 되었을 때 만이 말할 수 있는 그런 단어이다.

조미현 기획출판부 국장 mihyunc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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