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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 농업,농업 앞에 법

김정섭 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법률이나 농업이나,자연(自然)을 온전하게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히 문화(文化)의 산물이다.법률 전문가는 어떻게 느끼는지 몰라도,보통 사람에게 법률은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자연의 법’이 아니다.뜻밖에도,농업 역시 자연스러운 활동이 아니라 문화적 활동이다.농업은 결국 인간이 유기물(농축산물)을 추출하려는 목적으로 자연 생태계에 개입하고 관리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영어로 농업을 ‘agri-culture’라고 하는데도 나름의 일리가 있다.

문화는 자연이 아니므로 인간의 통제 대상이다.수정하고 조절해야 할 것들이다.사람이 만든 문화의 일부분인 텍스트(text)-법률과 행위-농업,모두 각자의 맥락(context)에서 독립적일 수 없다.맥락이 변하면,텍스트나 행위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문제는 법률이든 농업이든,제도화를 통해 굳어진 문화 유형은 융통성 있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그릇에 담긴 물이 넘치면 그릇을 바꿔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이른바 ‘청탁금지법’,‘농지법’,‘농업경영체육성법’,‘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그리고 ‘헌법’에 이르기까지,법률을 고쳐 농업 문제에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를 만들자는 논의가 여기저기에서 일어난다.국가법령정보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농업’이라는 열쇳말로 법률명을 검색하면 15개의 법률이 나온다.그것들을 포함해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으로 돼 있는 법률이 대략 75개 정도다.그중에 42개의 법률,즉 56%가 2001년 이후 제정됐다.해방 이후 농업·농촌 관련 법률의 절반 이상이 최근 20년 내에 제정된 것이다.이는 사회체계의 내부 분화와 더불어 농업이나 농촌 문제를 둘러싼 갈등 발생이 과거보다 더 많이 예상된다는 징후다.니클라스 루만이 말했듯,법은 있을 수 있는 갈등에 대한 예상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법 앞에 농업은 세심한 관리 대상이 된 것이다.

부품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기계가 고장날 가능성이 높듯이,농업 앞에 법은 복잡해진 그만큼 체계적으로 순조롭게 작동하지 못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꼬인 매듭을 단칼에 자른 알렉산더 대왕의 지혜 같은 해법은 차마 기대하지 않는다.그러나 법률은 워낙에 논리적이고 위계적인 체계 속에서 숨쉬므로,부채의 사북 역할을 하는 헌법을 잘 정비한다면 농업 앞의 법률 전체를 일매지게 처리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물론,헌법은 강력한 규제적 이념의 표현으로서 최상위의 구속력을 갖는다고 배운 것과는 달리,그 힘을 늘 상수(常數)처럼 발휘하는 건 아니다.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문장이 거리에서 항상 애송되는 건 아니다.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은 1987년에 만들어졌지만,내내 잊혔다가 경제 영역의 운동장 기울기가 문제시될 때에야 호명(呼名)되곤 했다.

결핍을 느낄 때에야 펼쳐보는 게 헌법이다.헌법은 사회적 트라우마와 그런 방식으로 연결된다.평소에는 만날 일 없는 혼백을 특별히 소환하는 주문(呪文)처럼 신경증의 원인이 된 잊혀진 트라우마를 암시하는 정신과 의사의 짧은 말처럼,헌법은 드물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용할 터이다.헌법 제121조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도,수십년 아니 백여 년도 더 된 근원적 사회 갈등의 트라우마를 반영한 것이다.‘경자유전의 원칙’ 말고도 농업과 관련된 어떤 내용을 헌법에 새로 넣어야 한다면,그건 심각하고 중대한 주장이어야 한다.‘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새롭게 포함돼야 할 유력한 후보라는 소문이 들린다.한편으론 동의하면서도,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야기를 헌법에까지 꼭 넣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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