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 ‘ 증오의 입’ 서로를 물다

일간베스트· 워마드 커뮤니티
극단적 혐오 기반 신조어 공유
호불호 넘어선 맹목적 비난
영국서 아시아인 이유 폭행
일본극우파 “ 한국인 구더기”
인종· 국적문제 범죄 대상
차이가 차별이 된 혐오 사회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지난 여름 휴가에 두 권의 책을 들고 떠났다.카롤린 엠케의‘혐오사회’와 모로오카 야스코의‘증오하는 입’.휴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책이지만,이 책을 선택한 건 그저 우연만은 아니었다.과거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던 뜨거운 여름,우리 사회는 폭염보다 뜨거운 증오와 혐오로 그 여름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왜 이렇게 서로를 혐오하는 것인지,서로를 향해 증오의 말들을 쏟아놓는 것인지 답답했고,궁금했다.두 권의 책이 깊은 답답함과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지만 소득은 있었다.

휴가에서 돌아와 나는 두 개의 커뮤니티를 유랑해보기로 했다.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와 워마드,이들은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커뮤니티다.각각 남성우월주의와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듯 보이지만,커뮤니티 회원들의 관심 영역은 정치,사회,문화 등 매우 넓고 다양했다.게시글의 제목만 보아도 두 커뮤니티가 매우 대립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었다.극단적인 혐오와 증오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혐오의 대상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인 경우가 많았다.남성이라서,여성이라서,외국인이라서,노인이라서,출신 지역이 달라서.그 다름은 곧장 비하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혐오의 감정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언어로 만들어져 공유되고 퍼져나가고 있었다.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되다 보니,‘혐오’라는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이를테면 워마드에서는 남성만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었고,일베에서는 여성만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었다.남성 중심의 커뮤니티 일베 유저들은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비하와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고,여성 중심의 커뮤니티 워마드 역시 유저들을 제외한 다양한 사람들이 비하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특정 대상이 싫을 수 있고,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그러나 아무런 이유 없이,존재 자체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이들의 언어를 들여다보고 있자니,일반적인 좋고 싫음[好惡]을 뛰어넘었다는 생각에 갑갑해졌다.그들이 시선에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은 지면에 옮기기조차 민망한 언어로 호명되고 있었다.그러다 문득 이런 의문이 스쳤다.‘그들도 때로 아무런 이유 없이 지독한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까?’하는 짧은 의문.

작년,영국의 한 거리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그 유학생은 젊은 한인 남성이었다.그가 맞은 이유는 단 하나,아시아인이기 때문이었다.유학생은 이가 부러지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유럽에서 가끔 발생하는 ‘혐오범죄’의 표적이 된 것이다.때로 우리는 인종의 문제가 아닌,국적의 문제로도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구더기,기생충,바퀴벌레,범죄자”는 일본 극우 세력이 한국인들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용어들이다.‘증오하는 입’이러한 명사 뒤에는 우리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동사와 형용사가 따라붙는다.‘증오하는 입’에서 주로 다루는 사례가 조선인/한국인(저자는 두 용어를 뒤섞어 사용한다.조센징은 한국인을 비하하는 용어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이라는 점은 한국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다.이런 방식의 혐오와 증오의 낙인찍기에는 일베와 워마드의 주요한 구성원인 젊고 건강한 한국인 남성과 여성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우스운 사실은 혐오발언을 일삼는 극우 일본인들도 인종차별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한국인들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일본인들도 유럽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증오범죄의 표적이 된다.그들 역시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말이다.노인이 된다는 것,외국인으로 산다는 것,남성이나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거나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모든 사람들은 ‘다름’에 노출된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다름’이 차별의 근거가 된다면 증오와 혐오는 우리의 일상이 될 수밖에 없고,누구든 혐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있다.

휴가 끝의 커뮤니티 유랑은 시원하지 않았다.일베와 워마드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졌다.모든 사람들은 타인과 다른 나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고,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그래,다 인정한다.그런데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그냥 다른 것이다.


>>> 유강하 교수

연세대에서 중국 고전문학(신화)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저서로 ‘고전 다시쓰기와 문화 리텔링’ ‘아름다움 그 불멸의 이야기’ 등 10여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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