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문학촌 첫 기증 유품
친구 김학수가 보낸 엽서에
‘야학당은 순탄하게…’ 표현

‘봄·봄’,‘동백꽃’,‘산골 나그네’,‘만무방’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을 남긴 김유정 소설가의 유품(엽서)이 처음으로 김유정문학촌에 기증된 가운데 김유정이 1936년에도 야학당인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유정문학촌이 처음 소장하게된 김유정의 유품은 유용태 강원고미술회 고문으로부터 기증받은 엽서다.이 엽서는 1936년(소화11년) 2월11일 대구에 살던 김학수가 친구 김유정에게 자필로 써 보낸 연하장으로 엽서에서 김학수-김유정이 소탈한 친구사이며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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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6년 2월11일 친구 김학수가 김유정 작가에게 보낸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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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엽서에서 ‘야학당은 순탄하게 진행된다니 다행일세’라는 대목이 가장 큰 눈길을 끈다.김유정은 1931년 23세에 고향에 내려와 야학을 열었는데 그것이 ‘금병의숙’(錦屛義塾)이다.김유정은 고향집 언덕받이에 움막을 파고 한때 자기네 마름집 아들인 조명희,조카 영수 등과 뜻을 맞춰 동아일보의 농촌계몽운동 교육교재로 야학을 열었다.야학 일에 열중하면서 마을 청년들을 모아 농우회와 부인회 등을 조직해 본격적인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다.그 농우회를 금병의숙으로 개칭,2년제 간이학교로 인가를 받은 뒤 학생들을 모아 가르쳤다.강원도에서는 강릉의 율곡의숙과 함께 대표적인 야학당이다.

엽서에 따르면 1936년 당시에도 ‘금병의숙’은 김유정이 맡아 원활히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동안 김유정기념사업회는 김유정이 그 당시 서울로 상경해 생활해왔던 것으로 파악했으나 이번 엽서를 통해 김유정이 서울로 간 이후에도 춘천을 오고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김유정문학촌 홈페이지 ‘김유정의 삶’에는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고향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1933년 잡지에 ‘산골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다’고 기록돼 있다.김금분 김유정문학촌장은 “엽서는 1937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고향 춘천을 잊지 않고 계속 오고갔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있다”며 “짧은 생애를 살아간 김유정의 역사를 살펴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유정의 친한 친구였던 안회남이 김유정 사후에 모든 유품을 가져간 후 월북,김유정의 후손들이나 김유정기념사업회가 그동안 관련 유품을 소장하지 못했다. 김호석 kimhs86@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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