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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 원고’

김상수 2018년 12월 25일 화요일
무술년 한 해도 딱 일주일을 남겨두고 있다.지난 한 해 얼마나 충실하게 독자들과 만났는지 돌이켜보게 된다.하루도 거르지 않고 독자와 만나야 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좋은 사람도 자주 만나다보면 결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이것이 멀어지는 빌미가 될 수 있다.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사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 한다.가끔 이름 있는 작가의 절필(絶筆) 소식을 접하곤 한다.그런 독한 결심을 하는 데는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겠지만 결국 독자와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뜻일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남의 글을 읽다가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 칠 때가 있다.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상대방이 하는 경우다.언젠가 ‘시와 소금’이라는 문학잡지를 보다가 김채운 시인의 ‘청탁 원고’라는 시를 읽고는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출하 일자에 맞추려/영글다 만 열매를 땄습니다./풋내 물큰한 무녀리들 앞에서/마음이 자꾸만 곱아졌습니다.//불시에 들이닥친 손님 상(床)에/설익은 떡을 내놓으시고는/물러나 속 끓이시던/오래 전 엄마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청탁 원고는 정해진 기준이 있다.글의 주제와 분량,마감시간이 있다.필자에게 보내는 ‘기대’라는 무언의 요구가 또 있다.이 기대는 물론 청탁서 목록에는 없다.가장 무서운 것이 글 빚이라는 말이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부탁을 하는 것은 저쪽에서 하지만 부담을 전적으로 떠안는 것은 이쪽이다.생각은 가둬지지 않고 시간은 무심하고 조바심 날 때가 많다.이럴 때의 시간은 어떻게든 버티면 돌아오는 제대 날짜와는 다르다.기자들은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의 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마감 시간은 개별적 사정을 봐 주며 오지는 않는다.마감시간을 ‘데드라인(deadline)’이라고 하는데 잔인한 구석이 있다.작가나 기자만 청탁을 받고 시간에 좇기는 것은 아니다.누구든 연초가 되면 여러 형태의 청탁을 접한다.타인의 주문이든,스스로의 다짐이든 이런 게 저마다 채워야 할 청탁원고가 아닐까.1년이 긴 것 같지만 잠깐이다.좇기 듯 원고 마감을 하고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던 일이 몇 번이던가.이유 불문하고 덜 익은 열매를 따고,설익은 떡을 상에 올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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