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와 이스라엘이 과거사 문제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이 2차 대전 중 약탈당한 유대인 재산의 반환 및 배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폴란드는 “이미 끝난 문제”라며 일축하고 있다.

폴란드는 자신들은 점령국 독일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은 게 없는 데 유대인 희생자들에게 보상하라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 문제는 특히 이달 하순 열리는 유럽의회 선거와 올가을 총선을 앞두고 폴란드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13일(현지시간) AFP와 AP통신에 따르면 폴란드는 세계 제2차 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유대인들의 중심지였다. 수 세기에 걸쳐 이뤄진 폴란드 내 유대인 공동체에는 약 330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폴란드 전체 인구의 약 10%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2차 대전 중 나치가 점령하면서 유대인 공동체는 쑥대밭이 됐다. 유대인 대부분이 나치에 학살당하고, 물론 재산도 빼앗겼다. 전쟁 이후에는 폴란드가 공산화하면서 유대인 재산은 국유화됐다.

2차 세계대전과 공산주의 체제에 따른 유대인들의 재산 상실과 관련, 폴란드는 유럽연합 회원국 중 배상과 반환을 규정한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은 유일한 국가다.

유대인 피해자 가족을 대신해 세계유대인원상회복기구(WJRO)가 꾸준히 재산 환수에 나서고 있으며, 이런 움직임은 최근 미국의 지원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기간 압수된 유대인 재산들의 반환을 요구하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특히 2차대전 중이나 그 이후 압수된 유대인 재산들의 반환과 관련, 미 국무부가 폴란드를 포함한 관련국들의 진전 상황을 의회에 보고하게 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지난 2월 폴란드 측에 유대인의 재산에 대한 반환이나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폴란드는 불공정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우경화 추세 속에 반유대주의 움직임도 부활하고 있다.

집권당인 극우 성향의 ‘법과정의당’(PiS)은 물론 중도파, 진보적인 야당조차 미국의 압력에 대해 “폴란드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며 무시하는 태도다.

지난 11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는 시민 수천 명이 배상 문제를 해결하라는 미국에 항의하기 위해 미국대사관을 향해 행진하기도 했다.

또 폴란드는 이스라엘 정부 측 대표단이 13일 바르샤바를 찾을 예정이었지만 방문 전날 이를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이스라엘 대표단은 코언 스칼리 사회평등부 장관이 이끌 예정이었다.

폴란드 정부는 “이스라엘 측이 마지막 순간에 대표단 구성을 바꿔 이번 회담을 (유대인 재산의) 원상 복귀 문제에 초점을 두겠다는 의향을 밝혔다”라고 취소 이유를 밝혔다.

폴란드 정부 측은 줄곧 유대인들에게 배상할 여력이 없다는 주장도 펴왔다.

지난 11일 시위를 벌인 민족주의자들은 유대인 단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3천억 달러(356조 원)를 지불해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폴란드 정부 측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폴란드를 나치 전쟁범죄의 공범으로 비난하는 행위를 불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증언조차 막으려 한다는 이스라엘 측의 강력한 반발에 처벌 수위에서 벌금과 징역형을 삭제하는 쪽으로 물러섰다.

지난달 한 폴란드 마을에서는 옛 부활절 전통의 재현 행사에서 전형적인 유대인 모습의 모형을 불태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반면 지난 2월 당시 이스라엘 외무장관 대행인 이스라엘 카츠는 “폴란드인들은 엄마 젓과 함께 반유대주의를 빨아먹는다”라고 말해 폴란드인들의 분노를 샀다.

유대인 측은 최근 수 주간 배상과 관련한 폴란드 내 어조와 언어들이 실망스럽다며 자신들의 주장에 오해가 있다고 말했다.

WJRO를 이끄는 기드온 테일러는 AP통신에 “폴란드가 피해국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언급하려 하는 것은 나치가 몰수한 재산이 아니다”라며 자신들은 전후, 그리고 공산정부에 의한 홀로코스트 이후를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돈은 또 3천억 달러를 물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권리침해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대화와 공정한 절차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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