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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권 교수의 도시건축기행]7.동유럽의 크로아티아와 아름다운

높이 23m·넓이 6m 성벽 너머 만나는 낭만과 풍요의 골목
중세도시 두브로브니크
지중해와 아드리아해 경계
보스니아와 맞닿은 도시
바로크·르네상스 양식 건물 즐비
197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300여m 길이 ‘플라차’ 거리
운치있는 작은 식당들
골목마다 중세 모습 그대로

데스크 2019년 10월 19일 토요일 12 면
▲ 두브로브니크 성채 안 구시가지 전경
▲ 두브로브니크 성채 안 구시가지 전경

북극의 에스키모인이 북극곰을 잡은 후 포효하는 모습을 상상한 후 떠오르는 이미지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라고 하면 용맹함,강인함,그리고 잔인함 등을 먼저 떠올린다.그리고 추수를 앞둔 황금 들판과 붉은 석양을 뒤로 한 채,하루의 일과를 마친 후 어깨에 농사기구를 걸터매고 집으로 향하는 늙은 농부의 뒷모습을 상상한 후 떠오르는 이미지를 표현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풍요로움,푸근함,그리고 여유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에스키모인에게 후자의 경우를 상상한 후 받는 느낌을 표현하라고 하면 쓸쓸함,외로움,그리고 황혼 등을 떠올린다.우리가 북극곰을 먹을 양식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처럼 황금 들판의 누런 벼들을 이들 역시 양식으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사실 예전에는 이 두 가지 경우 모두는 환경과 문화의 차이만 있을 뿐 겨울 동안 일용한 양식을 획득한 후 느끼는 포효와 여유로움이었다.이처럼 문화와 환경이 다를 경우 사람들은 그 다른 문화를 각자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동유럽 이미지는 공산진영,낭만,천년고성과 예배당이 있는 역사의 보존,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떠올린다.그렇다면 동유럽은 어느 나라를 지칭하는 것일까?

냉전시대 때는 서유럽과 동유럽의 구별은 간단했다.동쪽 소련과 같은 공산권이면 위치에 상관없이 동유럽,미국과 같은 자유진영이면 서유럽이었다.그러나 이러한 동유럽은 서유럽 중심의 역사에서 유럽이 아니었다.유럽은 당연히 서유럽 국가들만의 공동체였다.이러한 이유로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이 끝나자 일부국가는 스스로를 중부유럽,일부는 발칸유럽이라 칭하고,유고슬라비아 연방은 북쪽으로부터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마케도니아 이렇게 6개의 주권국가로 분열되면서 냉전시대의 동유럽은 사라졌다.

이러한 옛 동유럽 국가들의 전체이미지, 즉 자연의 아름다움,낭만과 야만성,사회주의,그리고 풍요로움 등을 함축하여 보여주는 중세도시 두브로브니크가 바로 크로아티아에 있다.

천혜의 관광자원과 고대 로마의 중세유적이 잘 어우러져 있는 친환경 관광국가 크로아티아는 한반도 면적의 4분의1,인구 450만명이 살고 있다.세르비아,보스니아와 국경을 나누고 있지만 이들과는 전혀 다른 평화로움과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 두브로브니크 성채 안 중앙도로인 플라차 거리
▲ 두브로브니크 성채 안 중앙도로인 플라차 거리

크로아티아 남쪽 맨 끝자락 아드리아해와 지중해가 만나고 보스니아와 맞붙은 지역에 두브로브니크가 있다.성곽으로 둘러싸인 구도심지는 13C 지중해의 중심도시였다.중세도시의 특성과 고딕,바로크,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한 이곳은 197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12C부터 수백 년에 걸쳐 지어진 성벽의 높이는 23M, 성벽두께는 6M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철옹성이다.

이 견고한 요새는 입구로 들어가면 전쟁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고,낭만이 가득차고 걷고 싶어지는 300여 M의 중앙대로 ‘플라차’ 거리를 만난다.이 중앙대로 주변으로 펼쳐진 작은 골목에는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고,지금도 4000여명의 주민들이 살면서 그들의 문화를 파는 수많은 수공예품 가게와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작은 식당들을 운영하고 있다.

▲ 페리선착장과 두브로브니크 성채
▲ 페리선착장과 두브로브니크 성채

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 일어난 내전으로 얼룩진 크로아티아지만 이 작은 중세의 도시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노예제도를 폐지했고,이 도시를 건설할 당시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하지 않고 수도원에서 임금을 지급했다고 한다.신분사회가 엄격했던 그 당시로선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또한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던 이 도시는 자유를 모토로 정직을 목숨처럼 생각했다.중앙광장의 기사 롤랑의 조각상은 상품의 길이를 재는 기준이 되었고,누구나 이곳에서 길이를 확인하게 하여 부정행위를 방지하였다고 한다.이처럼 과거의 이곳은 인도주의와 공공복지에 일찍 눈을 떴던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와 함께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던 두브로브니크를 갖고 있던 크로아티아는 1992년부터 시작된 유고연방제에서 벌어진 내전에서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 이주민과 무슬림인 보스니아 이주민을 대량 학살했다.이들 이주민은 수백년간 평화롭게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 정치,경제,문화를 공유하던 이웃이었다.종교집단간의 힘겨루기와 문화충돌을 핑계로 영토적 탐욕이 이러한 만행을 자행하였다.

▲ 관광객들과 작은 가게들이 적절하게 섞여있는 골목길
▲ 관광객들과 작은 가게들이 적절하게 섞여있는 골목길

중세도시에는 정직과 개방 그리고 인문주의 등의 문화를 갖고 있었던 두브로브니크,20C에는 유고연방 내에서 일어난 무차별 인종청소,그리고 지금 21C에 보여지는 낭만과 풍요로움,그리고 천혜의 자연관광지를 가진 나라로 비쳐지는 크로아티아.이 나라가 또 다른 역사적,문화적인 반전보다 지금의 환경과 모습에서 계속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이석권 강원대 건축과 교수

△춘천고,강원대 건축공학과 졸업 △한양대 공학 석사,강원대 공학 박사 △대한건축사협회,한국도시설계학회,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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