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옥 강원대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
‘좋은 영화’는 관객들을 스크린 밖으로 끌고 나온다.1997년 IMF 사태가 터지고 이를 수습해가는 와중에 대한민국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지난다.이 시기 떠오른 대한민국의 경제 정상화 방안의 하나가 부실기업들을 과감하게 정리 매각,해외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는데 그 부실기업들에는 은행도 포함된다.외환은행도 포함되고,가치가 70조원은 된다는 이 은행이,팩스 5장으로 시작한 곡절을 겪으며 론스타에 1조원대에 매각된다.
나는 여태까지,이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대한민국 사정이 그 정도로 안 좋았고,우리 경제 엘리트들이 국제 금융자본의 공격을 막아낼 실력이 없기 때문에 당했다고 알고 있었다.정지영 감독의 ‘블랙머니’는 이런 상식에 이의를 제기한다.영화는 론스타가 ①실제는 국제투기사기단 아닌가②대한민국 경제 엘리트들(모피아가 이너서클일 듯)이 정말 그들에게 당할만큼 무능했단(하단)말인가 하는 질문을,매각까지 이르는 과정을 끔찍하도록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던진다.내 답은 이렇다.론스타는 국제금융사기단일 수 있다(①).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 경제 엘리트들은 무능한 집단이 아니다(②).
그렇다면 이정환의 책 제목처럼,어째서 대한민국이 국제 투기자본의 천국이 되었는가.이를 설명할 단초는 이미 드러났다.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데 투자한 이들에는 ‘검은머리 외국인(한국인)’들이 포함돼 있고 이들은 경제 엘리트들의 친인척들이다.국제 금융사기단이 대한민국 은행을 껌값에 집어삼킬 수 있었던 것은 경제엘리트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도움’이라기보다는 ‘국제금융사기단’과 대한민국 ‘경제 엘리트’들의 합작품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세칭 보수에서 진보로,진보에서 보수로,다시 진보로 바뀌어도 나라의 근간인 엘리트 관료집단의 ‘이너서클’은 바뀌지 않은 것 아닐까.그게 경제계에 국한된 것일까?법조계는?외교계는?물음표가 끝없을 듯하다.정지영 감독의 ‘블랙머니’는 관객을 스크린 밖으로 끌고 나온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