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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종착점-평화의 출발점분단 66년.남북을 가로지르는 산과 들 그리고 강은 비무장지대(DMZ)라는 그물에 갖혀 반세기 넘게 숨죽여 살아왔다.한반도의 허리를 갈라놓은 총길이 240㎞ 내외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2㎞씩 총 4㎞ 안쪽 구간에 펼쳐진 DMZ은 말이 비무장지대이지 철조망과 지뢰로 둘러싸인 휴전지대이다.하지만 오랜 세월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DMZ 땅도 분단 전까지 수많은 마을주민이 시장거리에서 수다를 떨고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뛰놀던 평범한 마을이었다.참혹한 전쟁이 없었다면 철원의 드넓은 황금들판이
기획
박창현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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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한때 우리나라처럼 비무장지대(DMZ)를 사이에 두고 남·북이 냉전시대를 겪은 국가다.베트남이 1986년 도이모이 경제개방정책을 도입해 눈부신 경제성장과 함께 2000년 이후 세계시장에 문호를 본격 개방하면서 역사 속의 DMZ 마을은 다시금 세계인들에게 주목받고 있다.베트남 중부 중심지 꽝찌성 동하시를 중심으로 DMZ 유적지를 돌아보는 1박2일 또는 당일코스의 투어상품이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도 통일이 된다면 남북한 접경지역 일대의 관광상품화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베트남 DMZ투어의 중심지로 각광
기획
박창현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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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DMZ관광투어에서 가장 인기있는 코스라면 빈목터널을 꼽을 수 있다.현지에서 방문객을 안내하는 프안 티 마이 프응(PHAN THI MAi PHUONG) 문화관광해설사에게 시설운영상황을 들어봤다.-빈목터널을 소개하면.“베트남이 DMZ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라져 있을 당시 빈목마을은 북베트남의 최남단도시였다.1965년부터 1972년까지 미군의 전투기 공습에 대비해 총길이 1044.77m의 땅굴을 파고 살았던 생생한 전쟁의 역사가 남겨진 현장이다.당시 66만8876t의 폭탄이 터져 4200여명이 부상당하고 학교 113곳이 파괴됐다.처참
기획
박창현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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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베트남은 외세에 의해 남북이 갈라진 유사한 분단의 역사를 지닌 공통점이 있다.하지만 한때 서로 총칼을 겨눈 아픈 상처를 지닌 국가이기도 하다.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는 냉전시대의 산물로 올해로 66년째 존재하고 있는 반면 베트남의 DMZ은 1954년부터 1976년까지 22년간 피비린내 나는 내전 끝에 남북통일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상태다.하지만 최근들어 북위 17도선 일대에 그어졌던 베트남 비무장지대 주변 마을과 주요 전적지가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DMZ투어 관광지로 조명받고 있어 통일평화시대를 맞은 우리나라 D
기획
박창현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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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철원에는 정전 6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비밀스럽게 감춰진 역사의 현장이 수 없이 많다.그 역사와 기록들이 분단과 전쟁의 상흔 속에 점차 사라지고 있어 너무 안타깝다.”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은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철원의 비무장지대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돼 교감하고 위로받는 생태계의 보고(寶庫)가 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비무장지대 내 사라진 마을의 기록발굴과 남북공동학술조사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김 소장은 이어 “철원은 궁예의 태봉국부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관통한 근현대사의
기획
박창현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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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을 갈라놓고 있는 군사분계선의 한복판에 일제강점기 최대 곡창지대가 숨어있다.1945년 광복전까지 금강산을 오고다니는 전철역이 설치되기도 했다.한국전쟁 당시에는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유엔군과 중공군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포화를 쏟아부은 ‘저격능선전투’와 ‘삼각고지전투’가 펼쳐진 곳이다.그 역사의 현장은 다름아닌 철원군 근북면이다.한국전쟁까지만 해도 김화군이었다.일제강점기에는 드넓은 평야에서 거둬들인 식량이 일본으로 반출된 수탈의 현장이었다.현재는 유곡리에만 제한적으로 주민이 거주하고 대부분 남북의 완충지대인 DMZ 안에 잠들어 있
기획
박창현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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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만큼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닌 곳이 있을까.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형학적 영향으로 한때는 한반도의 통일국가를 꿈꾼 풍운아 궁예의 태봉국 도읍지였고 근현대에는 사람과 물산이 몰린 상업도시이자 일제의 수탈이 가장 극심했던 비운의 역사가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철원의 역사는 1945년 8·15광복을 계기로 소련과 공산치하에 편입되면서 굴절됐고 6·25한국전쟁으로 또다시 휴전선의 경계를 두고 남철원과 북철원으로 두동강나면서 비무장지대에 터전을 잃은 왜곡된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DMZ 마을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고 마을의
기획
박창현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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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군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1945년 8·15광복 당시 38선을 경계로 이북의 땅으로 편입된 곳이다.하지만 6·25한국전쟁 휴전협정에 따라 인제의 최북단이자 남북의 접경지역인 서화면 일부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남한으로 수복됐다.남북의 경계지점이 된 인제군 서화면은 현 면소재지인 천도리와 서화리 이외에 옛 행정구역상 남북 완충지대인 비무장지대(DMZ) 내 가전리(加田里),장승리(長承里),이포리(伊布里),서희리(西希里),심적리(深積里) 등이 포함된 동일 생활권이었다.이들 지역은 한국전쟁 이전까지 수많은 민가를 형성하며 평화롭게
기획
박창현
201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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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병관(87)·김광영(86)씨 부부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인제 서화면을 떠나지 않고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봤다.심씨가 서화중 2회,김씨가 서화중 1회 졸업생이다.인제 서화면이 8·15해방 직후 북한으로 편입되면서 6·25한국전쟁 당시 대부분의 주민이 북한으로 피란을 떠났지만 심씨는 당시 유행한 전염병에 걸려 피란을 떠나지 못하고 뒷산 동굴에 숨어 생명을 건졌다.심씨는 “아직도 전쟁 전후의 상황을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는지 끔찍하기만 하다”고 회상한다.심씨 부부는 한국전쟁 이전 서화면 일대 마을 상황에 대해 “5일
기획
박창현
201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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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구의 DMZ마을 수입면양구 수입면(水入面)은 대부분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측 4㎞ 구간 내 비무장지대에 포함된 북측지역이다.민간인이 거주할 수 없는 남측 양구군 동면 사태리(沙汰里),비아리(比雅里)와 해안면의 극히 일부지역을 빼면 수입면이 곧 양구의 비무장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수입면은 현재 북한 금강군으로 편입된 미수복지역이다.어찌보면 양구의 반이 북한에 수복된 수입면인 점을 감안하면 양구 역시 고성이나 철원 처럼 행정구역이 DMZ으로 인해 반토막난 ‘분단 군(郡)’이라고 할 수 있다.아이러니하게 북한령인 수입면은
기획
박창현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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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시절 한국전쟁 발발 직후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의 손에 붙들여 월남한 이후 60여년간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어린 시절 기억에 문등리 주민은 형석광산에 근무하는 광부와 인삼 재배농가가 많았다.우리 집은 1만여평 규모로 인삼을 재배했는데 전국적으로 수입면 인삼 품질이 가장 좋았다.전국 인삼시장에서 ‘수입면 인삼’이 모두 팔려야 다른지역 인삼이 팔린다고도 했다.전국에서 처음으로 문등리에 인삼조합이 구성되기도 했다.광산 덕분에 전깃불이 들어올 정도로 번성한 곳이었다.광부들이 워낙 고된 일을 했기 때문에 술집도 많고 흥청되는
기획
박창현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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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향민이 전하는 고성군 수동면은.△이보영(84·고성 수동면 사비리 출생)=“6·25전쟁 다음해인 1951년 1·4후퇴쯤 속초로 피란했다.6·25전쟁 전까지 어린시절을 수동면 신대리와 고미성리의 가운데 마을인 사비리에서 컸다.국민학교는 마을에서 4㎞ 거리의 고미성리로 다녔고 초급인민학교(중학교)는 면소재지가 있는 신대리로 걸어다녔다.중학교까지도 4㎞ 가량 떨어졌다.주로 중급인민학교(고등학교)는 고성읍으로 나갔다.사비리는 120호 정도가 살았는데 남강을 중심으로 아랫마을,윗마을로 나눠 불렀다.장마가 나면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가 떠내
기획
박창현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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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동면남강을 끼고 형성된 고성군 수동면은 행정구역상 남과 북을 갈라놓고 있는 군사분계선상에 놓인 마을이다.남·북한 비무장지대(DMZ)의 한복판이자 민간인이 살지 않는 대표적인 마을,그곳이 고성 수동면이다.현재 남한 내 수동면 전역은 민통선 지역으로 묶여 명목상 행정구역으로만 있고 면사무소도 설치돼 있지 않다.본지 취재진은 최근 DMZ을 관할하는 유엔사령부의 출입절차를 거쳐 수동면 지역을 가장 근접하게 볼 수 있는 최북단 동해안초소(829GP)를 방문,사라진 마을풍경을 앵글에 담았다.지난 달 5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동해안초소는
기획
박창현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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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짤린 한반도의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이 ‘고성’이다.이곳은 분단 이전까지 금강산과 동해가 둘러싼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풍요로운 농촌이자 어촌마을이었다.하지만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군사분계선이 그어진 고성 현내면~수동면 일대가 비무장지대로 대거 포함되면서 민간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지난 60여년간 적막한 무인(無人)마을로 변해버린 고성 비무장지대 내 현내면과 수동면 마을을 2회로 나눠 찾아가 본다.■남측비무장지대 최북단 마을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당시 설정된 이른바 휴전선인 군사분계선(MDL)은 이듬
기획
박창현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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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 체결된 이날을 기점으로 1129일간의 6·25한국전쟁이 일단락되면서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非武裝地帶)라는 새로운 지역이 탄생했다.정전협정과 동시에 반세기 넘게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 곳이 DMZ이다.그 세월이 올해로 66년째다.본지는 비무장지대 탄생과 함께 사라져 간 DMZ마을에 눈을 돌렸다.특별기획 ‘비무장지대,사라진 마을을 찾아서’는 DMZ이 그어지기 이전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실향민들의 이야기와 사라진 마을의 자료를 발굴하기 위해
기획
박창현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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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사라진 마을은 어떻게 추출했나남북공존시대로 접어들면서 DMZ에 대한 자연친화적인 활용법과 보존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DMZ 설정 이전 지형과 지질,자연부락 등의 기초자료가 최우선적으로 분석돼야 한다.이에 강원대 DMZ HELP센터(센터장 김창환)와 강원도민일보 기획취재팀은 토목공사가 진행되기 이전의 DMZ내 공간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14년부터 1918년 사이 제작한 지형도(축척 1:50,000)에서 당시 가옥과 지명을 추출했다.또 이 자료를 지리정보시스템(GIS·Ge
기획
박창현
2019.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