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 성공회대 교수

▲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
▲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처한 예술인 지원을 위해 정부가 대규모 공공미술프로젝트를 가동한다.전국의 마을과 공공시설 등에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하는 사업이다.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3차 추경 예산 3399억원 중 759억원 가량이다.문체부가 예상하고 있는 참여 미술가는 대략 8436명.이들이 전국 곳곳의 주민공동시설과 복지관,광장 등에 미술 작업을 하게 된다.

일단은 반가운 소식이다.코로나 사태로 인해 거의 모든 예술인들의 당장의 생계가 막막해진 상황이다.정부로서는 긴급 지원으로 예술가들의 시급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는 한편 그동안 부족했던 공공미술 분야를 전면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가우면서도 한편 걱정이 된다.마을벽화에 한정해 보면,1990년대 말부터 산발적으로 그려지던 마을벽화가 2005년을 전후로 급속히 증가했고 2010년 경 이후로는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한 국가의 장기적인 문화사업의 측면과 각 지방자치단체,민간기업,지역예술 협회·단체,그리고 일부 종교단체 등에 의해 전국적으로 장기적이며 전면적이고 다양한 방식과 절차에 따라 전개됐다.대전시만 해도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총 벽화 수가 무려 835곳이었다.동구 236곳,중구 253곳,서구 105개소,유성구 60곳,대덕구 181곳 등으로 가히 대전 전역의 웬만한 공간에 모두 벽화가 그려졌다고 해도 된다.이는 대전만의 현상은 아니다.특히 2010년을 전후로 부산 감천마을,통영 동피랑마을,인천 동화마을 등 아예 동네가 관광지로 변한 곳도 많다.강원도의 구석구석에도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다.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으나,글쎄…벽화의 수준이나 사후관리 문제는 지속 제기되어 온 문제다.그 마음은 갸륵하지만 봉사단체나 학생들의 벽화는 그릴 때부터 수준이 낮은데다 현장 관리도 제대로 안 돼서 페인트 자국이 길바닥까지 번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실력 있는 미술가들이 꼼꼼히 그린 벽화도 사후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몇 해 후에 가보면 차라리 안 그린 것만 못한 경우가 많다.

더 문제는 벽화가 해당 주민들의 삶이나 그 정서와는 동떨어진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지독히도 가난한 곳에 날개나 무지개를 그려놓고는 ‘희망’이나 ‘나눔’ 같은 듣기 좋은 말을 써 놓기 일쑤인데,정작 가난하게 살고 있는 주민 입장에서 그것을 보는 심정이 어떨지 걱정이다.범죄를 막는다고 벽화를 그리는 수도 있는데,그렇게 그리는 순간 그 동네는 가난할뿐더러 범죄도 발생하는 지역이 된다.방범 안전시설이나 교통편,공부방,쉼터 같은 진짜 필요한 시설 대신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세워놓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이고 예술일방주의다.

문체부는 2006년 ‘예술인 일자리 창출’로 ‘아트인시티’ 사업을 진행했고 이를 확대,2009년부터 ‘마을미술프로젝트’를 10년 넘게 진행해오고 있다.분명 그 성과는 있다.그러나 주민들을 대상화한 작품들,사후관리도 안 되는 경우들이 많았다.그랬는데 이번에도 벽화,조형물에 700여억원을 투입하고 8000여명이 참여한다.우선 급한 상황이라,이렇게 지원해야겠지만 10년 넘게 되풀이된 시행착오를 반복하기 보다는 그 재원과 그 많은 참여자들이 좀 더 생산적이고 실험적이며 주민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에 집중하도록 하면 어떨까.마을벽화 그리기는 10여년전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마을벽화는 이제 그만,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그래야 759억 원의 혈세 투입이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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