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같이 솟는 여린 감성·보랏빛 수국처럼 생생한 언어
수줍음 지닌 나직한 말씨
동시쓰기 자부심 짙게 배어
동심의 언어로 아이들을 기록
교직생활하며 470여편 발표
퇴직 후 도내 곳곳 강연 활동

▲ 이화주 시인의 작업 모습
▲ 이화주 시인의 작업 모습

아쉽게도 C19가 이화주 시인의 집필실 방문을 막았다.나는 할 수 없이 이화주 시인에게 집필실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우린 춘천 변두리 음식점에서 만났다.

사실 예술인탐방은 집필실이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화주 시인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방문한다는 것이 나는 선뜻 내키지가 않아서 밖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비밀의 방이 아닌 곳에서의 특별한 만남은 그렇게 하여 시작되었다.칠순을 넘긴 시인은 단정하고 고왔다.음성은 나직하고 부드러웠다.그러나 수줍음을 지닌 시인의 말씨에서 동시쓰기에 대한 자부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유리창에 드리운 6월의 녹음을 배경으로 시인은 보랏빛 수국처럼 싱싱했다.어쩌면 시인의 가슴엔 샘물 같은 여린 감성이 늘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화주 시인이 유현초등학교에 만들었던 초록교실 모습
이화주 시인이 유현초등학교에 만들었던 초록교실 모습

춘천에서 동시를 쓰거나 동화를 쓰는 이가 몇 분이 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그러나 춘천에서 공부를 하고 춘천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동시를 꾸준히 쓴 시인은 손꼽을 정도로 적은 편이다.그 중 뛰어난 시인이 있다면 나는 이 두 분을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한 분이 임교순 시인이고,또 한 분이 이화주 시인이다.국민동요 ‘초롱꽃’을 작시한 임교순 시인과 이화주 시인은 같은 학교 동문이며 선후배 사이다.임교순 시인은 춘천교대 전신인 춘천사범을 나와 춘천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원주에서 퇴임했고,이화주 시인은 춘천교대를 졸업하고 역시 춘천교대부속초등학교에서 퇴임했다.

모두 선하고 따뜻한 심성을 지닌 분들인데,티 없는 감성으로 쓴 주옥같은 동시와 동화는 아이들은 물론이고,어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이화주를 시인이 되게 한 근본바탕은 무엇일까.이 물음은 한 문학인이 걸어온 생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이화주 시인은 가평에서 태어났다.어릴 때부터 이화주는 책을 무척 좋아했다.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그런 이화주를 아버지는 매번 칭찬했다.북에서 피란 온 오빠가 이웃에 있었는데,그의 서가에 꽂힌 ‘현대문학’과 ‘자유문학’을 남김없이 읽었다.

이화주 시인이 교사 재직 시절 아이들과 함께 한 사진
이화주 시인이 교사 재직 시절 아이들과 함께 한 사진

가평 가이사 중학교를 다닐 때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이화주는 도서반에 들어 그곳에 있는 문학서적을 모두 탐독했다. 글에 대한 갈증은 끝이 없었다.‘나의 문학적 소양인 감성의 힘은 그때 책에서 길러졌다’고 말할 정도로 책은 이화주 시인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훗날 이화주는 학교에 부임하고부터 도서관을 개설하고 그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읽고 쓰기를 가르쳤다.때로는 자연과 벗하기 위해 산과 들을 쏘다녔다.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생명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그리고 그 감동을 아이들과 함께 느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그것을 이화주 시인은 감성의 힘이라 정의했다.그 감성은,‘어쩌면 어린 시절 대청마루에 드리운 달빛이 저의 감성에 불을 지폈지 않았을까 싶어요.’라고 이화주 시인은 말했다.달빛에 옷이 젖었나 만져보면 달빛은 그냥 보송보송한 느낌이었다고 했다.‘달밤’은 그렇게 하여 한 편의 반딧불이 같은 시가 되었다.그것이 1997년 국정교과서 6-2 읽기에 수록되어 시인으로서 최고의 보람을 느꼈다.이후 ‘뒤꿈치 드나봐’,‘고건 모르지요’,‘말싸움’ 등 여러 작품이 교과서에 연속으로 실렸다.그때 이화주 시인의 머릿속엔 아이들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고 했다.시인이 사랑한 아이들 하나하나가 시인에겐 꽃이요 구름이요 나무였다.시인은 그 아이들의 몸짓과 천진함을 받아들였고 아이들의 말과 생각을 동심의 언어로 기록했다.시인은 아이들과 시인이 하나였음을 깨달았다.아이들과 함께 동시를 쓰고 나누어 읽으면서 시인은 철마다 바뀌는 사계절의 순환을 온몸으로 감지했다.달리 말하면 시인은 어른이 되기를 멈춘 아이였다.

지금까지 이화주 시인은 일곱 권의 동시집을 펴냈다.시인으로 등단한 후 40년 동안 470여 편의 동시를 발표했다.그중 여러 편은 교과서에 실렸고,또 많은 시들이 사람들에 의해 애송되었다.노랫말이 된 시도 있었다.하지만 주목받지 못한 동시도 있었다.그렇다고 그 시들이 널리 사랑받는 시들보다 못한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더 깊고 더 은은한 빛을 발하는 시도 많았다.이화주 시인에겐 어느 것 하나 소홀한 작품이 없었다.이화주 시인에겐 버림받은 아이가 있을 수 없듯이 기억의 그늘에서 사라진 시가 있을 리 없었다.그 시들은 이화주 시인이 가르쳤던 잊을 수 없는 아이들이나 다름없었다.시와 아이들은 시인에게 있어 빛나는 보석들이었다.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면서 하나하나 외는 이화주 시인.참된 선생님으로서,빛나는 시인으로서,이화주 시인은 아이들 곁에 늘 있었다.

▲ 이화주 시인이 펴낸 책 모음
▲ 이화주 시인이 펴낸 책 모음

이화주 시인이 교직생활 중 가장 큰 보람은 ‘소규모학교의 다기능 도서관’을 만든 일이라고 했다.처음 유현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했을 때 이화주 시인은 전교생 19명의 해맑은 들꽃들과 만났다.작은 숲속학교에서 교실 두 칸을 내어 ‘초록둥우리’란 이름의 도서관을 개관했다.도서관은 학교 활동의 중심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력과 감성이 쑥쑥 자라는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이 작은 숲속의 도서관이 널리 알려지자 도서담당 교사들이 찾아왔고,교장단이 큰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기도 했다.

‘소규모학교 다기능도서관’은 전국도서관대회에 참가하여 우수 도서관 사례로 발표되는 영광도 누렸다.훗날 춘천교대부속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야 우리 도서관’을 짓게 된 것도 유현초등학교의 ‘초록둥우리’가 그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이화주 시인은 춘천교대부설초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이제 아이들은 시인의 곁에 없었다.하지만 이화주 시인은 늘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동시를 꾸준히 써 문예지에 발표했고,춘천교대에 출강하여 ‘아동문학창작’을 가르쳤다.시인은 왕성한 창작활동과 더불어 각처에서 들어오는 강연 요청으로 늘 바빴다.그러나 시인은 고요한 미소로 그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화주와 함께 하는 동시 여행’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특히 양구 해안초교나 홍천 모곡초교,다목초교와 추곡초교 등 깊은 산골학교에서 간절히 이화주 시인을 원했다.이화주 시인은 어디든 갔다.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유치원도 좋았고,시골학교 어머니들도 좋았다.불러만 준다면 만사를 제치고 그 어디든 달려갔다.올 2020년 7번째 시집 ‘나는 생각 중이야’를 출간했다.퇴임 후 세 번째 동시집이다.한국아동문학상과 윤석중문학상을 받은 이 나라 최고 반열의 시인인 이화주 님은 지금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물론,시인이 사랑하는 아이들은 시인의 포근한 가슴속에서 꽃나무가 되고 별이 되고 희디 흰 구름송이가 되어 자유롭게 떠다닌다.시인이 가만히 미소를 지을 때는,나무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냇물과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하찮은 미물에게도 인격을 부여하는 능력이 이화주 시인에겐 분명히 있다.

시인·춘천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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