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립극단 ‘로미오와 줄리엣’내달 시작 순회공연 결투씬 위해
춘천 펜싱 지도자들과 협업 나서

▲ 안시현 봄내중 펜싱 지도자가 배우들에게 펜싱 기본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 안시현 봄내중 펜싱 지도자가 배우들에게 펜싱 기본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한승미 기자]“아땅시옹(Attention)!살뤼(Salut)!”

매일 오전 강원도립극단 연습실에서는 의문의 프랑스어가 울려퍼지고 있다.세계명작극장 ‘로미오와 줄리엣’ 연습이 한창인 이 곳에서 새어나오는 프랑스어의 정체는 펜싱 연습소리.‘로미오와 줄리엣’의 백미인 결투씬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춘천의 실제 펜싱 감독들이 나섰다.연극에서는 안무가나 전문 무술감독이 배우 움직임을 지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하지만 김혁수 도립극단 예술감독은 이번 작품을 위해 수도권의 개인 강사나 안무가를 찾는 것보다 지역의 펜싱 전문가와 함께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춘천의 펜싱지도자들에게 협업을 부탁했다.

이에 따라 이번 작품 무술감독은 오수연 춘천여고 펜싱 지도자(춘천펜싱협회 전무이사)가 맡았다.또 안시현 봄내중 펜싱 지도자가 배우들의 결투씬을 전담하고,허영구(강원체고)·장덕규(강원체중) 펜싱 지도자도 코치로 함께했다.

지난 달 첫 연습 이후 2주간은 펜싱의 기본기를 다졌다.오 감독과 코치들은 예를 갖춘 인사법과 칼잡는 방법,기본 스텝 등 기본부터 탄탄히 교육했다.배우들의 열정은 뜨거웠다.칼이 무거워 손에 물집이 잡히자 목장갑을 끼며 훈련에 임했고 곧 칼 다루는 솜씨가 능숙해지기 시작했다.칼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는 일도 도전이었다.배우들은 “날카롭고 뾰족한 칼이 눈앞에 오가는 것은 꽤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공연에 오르는 배우 21명 중 전투씬 참여 배우는 8명이다.몬태규 가와 캐퓰럿 가의 하인들이 싸우는 전투부터 로미오와 티볼트(캐퓰럿 부인의 조카)의 전투 등 모두 다섯 장면의 결투씬이 펼쳐진다.오수연 감독은 각기 다른 다섯 결투씬을 만들기 위해 대본을 통독하며 각 캐릭터를 이해했다.오 감독은 “캐릭터별 성격이나 계급에 따라 달라지는 결투를 움직임에 녹여내기 위해 고민했다”고 했다.

검술이 타고난 티볼트는 정교하면서도 호전적인 결투를 펼치는데 비해 칼이 익숙치 않은 로미오는 격식 있지만 분노에 휩싸인 움직임이 더해졌다.베로나 영주 가문의 파리스 백작(줄리엣의 정혼자)과 벤볼리오(로미오의 친구)는 검술의 예를 깍듯이 갖추는 반면 두 집안 하인들은 이를 흉내 내지만 근본은 없는 결투를 이어간다.기본기를 익힌 배우들은 캐릭터를 연구하면서 상황에 맞는 결투씬을 함께 고민했다.이를 무술감독에게 선보이면 기술적인 면을 손보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가장 많은 결투씬에 등장하는 배우는 티볼트 역의 최유준 배우다.최 배우는 뮤지컬 ‘밀사’ 등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일본 자객으로 열연한 경험도 있다.그는 “주로 동양검술만 경험해본 터라 서양검술도 익혀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로 배우게 돼 좋다”고 했다.특히 전문 무술감독이 아닌 실제 펜싱 전문가들의 지도가 소중한 경험이라고 했다.최 배우는 “연기를 위해 보여지는 자세나 액션만 배운 것과 달리 전문 코치님들이 기본부터 지도해주셔서 더 신뢰가 가고 움직임에도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 오수연 무술감독(춘천여고 펜싱 지도자)이 최유준 배우를 지도하고 있다.
▲ 오수연 무술감독(춘천여고 펜싱 지도자)이 최유준 배우를 지도하고 있다.


펜싱은 하체 힘이 중요한만큼 배우들은 체력관리에도 힘쓰고 있다.특히 남자 역할(그리고리·캐퓰럿 가 하인)을 맡아 결투씬에 참여하는 유일한 여성인 김희재 배우는 근력운동을 병행하고 있다.김희재 배우는 “어린시절 무용을 했지만 남자 배우들이 힘을 조금만 써도 따라가기 벅찰 수 있어 근력운동을 따로 하고 있다.남자배우들이 어린시절 칼싸움 경험을 떠올리며 동작을 만들 때도 공감대가 없어 애를 먹기도 했다”고 했다.

오수연 무술감독에게도 이번 일은 큰 도전이었다.오 감독은 “전문 배우 지도가 처음이라 부담스러웠지만 펜싱 저변확대를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비인기 종목이지만 연극을 통해 펜싱의 재미를 느끼시길 바란다.다른 지역에서 취미로 각광받고 있는 펜싱이 춘천에서도 활발해졌으면 한다”고 했다.김혁수 감독은 “실제 펜싱 전문가들과 함께하니 사명감과 전문성이 더해져 극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강원도립극단의 2020년 정기공연으로 내달 무대에 오르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내달 18일 춘천을 시작으로 도내 8개 지역에서 순회공연한다.티켓은 오는 18일 오픈된다.

한승미 singm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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