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 성공회대 교수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예측이 하나둘씩 입증되고 있다.코로나로 인해 1학기 내내 모든 교육자와 학생들이 ‘비대면’이라는 미증유의 상황을 힘겹게 버텼는데,2학기에도 여전히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이는 필시 극복해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가능성이랄까,아직은 희미하지만 분명히 새로운 문화가 서서히 작동하고 있다.우선 대학의 경우 휴강이 거의 사라졌다.코로나 이전에는 교수의 공적 활동 때문에 불가피하게 휴강을 할 수도 있었다.그런데 ‘비대면’ 여건에서는 휴강 대신 사전에 강의를 녹화하여 제공하면 된다.학생들 입장에서도 휴강과 보강 없는 원만한 학사 일정은 물론이고 대개의 강의들도 ‘다시 보기’ 등의 방법으로 나름 알찬 공부를 할 수가 있다.

물론 모름지기 교육이란 학교에서 교육자와 학생들이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는 것이 근본이다.언젠가 코로나를 극복했을 때도 비대면의 기술 방식은 보완 장치로만 써야 한다.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인문주의자의 한가로운 주장일 수도 있다.코로나가 물러간 뒤에는 변화된 교육여건과 급발전하는 기술기반에 의해 기존의 교육 문화가 대폭 변화될 것이고,그것은 아마도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올해 추석이 또한 그런 생각을 여물게 했다.꽤 오랫동안 명절문화를 개선하자는 얘기가 있어 왔다.해마다 설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가족들이 이젠 좀 간소하게 지내자고,이렇게 모여서 차례 지내고 지쳐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어디 가볍게 여행이라도 가자는 얘기들이 오갔다.명절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 같은 것도 씁쓸히 회자되기도 했다.언론에서도 명절을 간소하게 그리고 즐겁게 보내자는 캠페인을 꾸준히 전개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과한 격식도 사실은 오랜 전통문화가 아니라 한국전쟁과 1970년대 ‘이촌향도’의 산업화를 거치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과정에서 강화된 현대의 산물이라는 의견도 이제는 충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극단의 전쟁과 극심한 가난을 견뎌낸 세대에게 명절은,한편으로는 가례를 잇는다는 점도 있지만,더 밑바닥에는 ‘차례 정도는 지내고 산다’는 심리적 기제가 강하게 작동했을 것이다.

그것이 한 세대 이상의 강고한 명절 풍습으로 자리잡았지만 금세기의 격렬한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변화가 예고되어 왔다.가족 개념의 변화,과중한 노동,고향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변화된 인식 등이 그것이다.그래서,전쟁과 가난을 거친 어른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간소하게,차분하게,즐겁게들 지내자는 말씀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기는 해도 당장 명절이 다가오면 옛 풍습대로 모두들 힘겹게 기나긴 연휴를 과중한 심리적 부담을 견뎌내면 지냈다.특히 여성들의 노동,무엇보다 시댁 어른들의 심기까지 헤아려야 하는 극심한 감정노동은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부각됐다.

그랬는데,코로나가 그 모든 것을 잠시 멈추게 했다.과한 상차림은 물론이고 모처럼 고향을 방문하는 행렬도 줄었다.그리고 돌아보게 했다.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명절 제대로 안 지내면 큰일 날 것 같았는데 별 일들 없이 무난하게 지냈다.이렇게 코로나는 우리의 익숙했던 모든 것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다.아마 금방 변화가 오진 않을 것이다.그렇기는 해도,코로나 이후,우리의 명절 문화도 틀림없이 변할 것이다.모두들 같은 마음이었지만 선뜻 용단하기 어려웠던 과한 풍습들은 줄어들 것이다.코로나가 대대적인 현장 학습을 시켜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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