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영화 ‘겨울밤에’ 장우진 감독·양흥주 배우
“느린 템포로 그린 무의식의 시간여행”
“과거에 머물러 사는 중년에 대한 이야기”

[강원도민일보 한승미 기자]“30년만에 춘천을 찾은 남녀,무언가 잃어버린 이들의 잊지 못할 한겨울밤의 꿈 같은 영화”

춘천을 배경으로 한 장우진 감독의 영화 ‘겨울밤에’가 10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도내에서는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과 춘천CGV에서 상영된다.춘천 출신인 장 감독 작품의 춘천 개봉은 이번이 처음이다.‘겨울밤에’는 ‘새출발’(2014)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장 감독이 ‘춘천,춘천’(2016)에 이어 선보인 사계절 춘천 시리즈의 겨울 편이다.청평사 등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중년들의 상실과 구도에 대한 이야기다.제40회 낭뜨3대륙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청년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주목 받았다.‘춘천,춘천’에서 흥주 역을 연기한 춘천 출신 양흥주 배우가 이번 영화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함께 했다.기획부터 대사까지 배우들과 논의해 만들어가는 것이 장 감독만의 작품 스타일인 만큼 두 사람을 함께 만나 이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영화 ‘겨울밤에’ 개봉을 앞둔 장우진 영화감독과 양흥주 배우가 최근 예술소통공간 곳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방도겸
▲ 영화 ‘겨울밤에’ 개봉을 앞둔 장우진 영화감독과 양흥주 배우가 최근 예술소통공간 곳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방도겸

-‘겨울밤에’ 예고편이 독특하다.옛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장=“부모님이 영화광인데 영화관에 잘 안 가시려고 한다.빠르고 화려한 영화가 부모님에겐 홍대 편집숍에서 옷을 고르는 느낌인 것 같다.상대적으로 느린 템포의 영화인 만큼 50∼60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싶어서 옛 정서를 담았다.요즘 레트로가 대세인데 젊은 친구들도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양=“어찌 보면 시대에 뒤처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줬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사실 영화관에 가면 약간의 흥분,편안함,기대감 이런 것을 느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멀티플렉스와 같은 편리성을 추구하다보니 나이 많으신 분들은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다.그래서 오래된 영화를 보는 듯한 이 영화가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장우진 감독
▲ 장우진 감독
▲ 양흥주 배우
▲ 양흥주 배우


-전작 ‘춘천,춘천’에 이어 ‘흥주’라는 본명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양=“‘춘천,춘천’의 흥주가 이어진 것 아니냐는 말이 있는데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특별히 다른 이름을 짓는 것보다 등장인물의 이해되는 측면,접근성 등을 고려해 내 이름을 계속 쓰기로 했다.상황과 등장인물 때문에 관객들은 다르게 느낄 것이다.”
△장=“각기 다른 중년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촬영장과 극중 흥주 형님은 분명 다르다.‘겨울밤에’의 흥주는 많이 다운돼 있는데 실제 양 선배로 나왔다면 아마 영화가 더 유머러스해졌을 거다.반대로 최근 작업한 단편 ‘캠프페이지’에서는 모두 다른 1인 7역을 연기했다.”

-‘돌려요’라는 말과 함께 차가 유턴하면서 영화가 시작한다.
△장=“시간여행이다.CCTV 장면도 과거를 보여주는 것으로 화면이 줌아웃 되면서 과거임을 알려준다.1∼2시간 전의 이야기를 하다 점점 멀어지고 어느새 30년 전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양=“중년남자는 물리적인 시간여행이 아니더라도 늘 심리적으로 과거에 빠져 산다.현재가 멈춰 있다고 생각하니까 앞을 보지 못하고 좋았던 과거에 빠져있다.‘겨울밤에’의 흥주가 그런 식이다.영화 말미에는 유리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현재의 모습을 조금 본다.”

-중요한 장면인가.자세히 설명해달라.
△장=“흥주에겐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한 여자를 찾아 헤매다 카페에 도착하는 장면인데 촬영도 힘들었다.보통 한 씬을 두세 번 촬영하는데 이 씬은 첫날 20여번을 찍고도 아쉬움이 남았다.촬영감독도 잠이 안 온다고 해서 다음날 40여번을 더 찍고서야 만족했다.”
△양=“정말 힘들었다.유리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미묘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웠다.한 컷이지만 등장인물이 얼마를 생각할지 다 포인트를 줘야하니까 연기적으로 어려웠다.”
△장=“허상일지 모르는 존재를 찾고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불이 꺼지면서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다.자기를 마주하고 눈빛이 변하며 현실을 자각한다.‘너 뭐해?뭘 찾고 있는 거야?’”

▲ 청평사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 ‘겨울밤에’의 한 장면
▲ 청평사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 ‘겨울밤에’의 한 장면

-현실과 환상,기억과 기억 간 모호한 경계가 어묵국물,담배의 연기와 함께 전환된다.
△장=“‘연기처럼 사라졌다’는 문학에서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인데 이미지로 바꾸고 연기를 더하니까 생소하고 새롭게 느껴지더라.”
△양=“장 감독이 대단한 게 영상으로 담길까 의문이 드는 부분들을 잘 담아낸다.연기로 예를 들면 희곡이나 시나리오 사이에 휴지(休止) 구간이 있는데 실제로는 쉬면 안되고 호흡 에너지로 표현하는 구간이다.‘열풍기 장면’은 어제처럼 선명한데,대사도 음악도 없이 숨막힐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관객 역시 힘들어하지만 이 순간을 기다리게 만든다”
△장=“영화 곳곳에 들어간 ‘심우도’ 그림 같은 역할이다.화면은 멈춰 있지만 그림을 보면서 이전 파트를 되새김질하는 시간이다.머리로는 전개가 되기 때문에 멈춤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30대 젊은 감독인데 중년의 정서를 담은 영화들을 발표하는 점이 독특하다.
△양=“중년 감성을 실제 이해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결국은 사람의 발견에 대한 부분이다.발견을 간과하지 않고 캐치한다.”
△장=“해외 영화제 상영 뒤 중년 여성이 찾아와 울면서 남편 욕을 하면서 공감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한국 정서 뿐 아니라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특히 30∼50대 기혼여성들이 많이 공감하더라.영화 속에 ‘제게 그것밖에 없거든요’라는 여배우 대사가 있는데 영화 준비단계 때 만난 한 여성이 했던 말이다.이혼하고 나니 자신 명의로 된 것이 휴대폰밖에 없었다는 말이 울컥했다.서영화 선배님께 이야기했더니 기가막힌 포인트에서 쓰셨다.”
△양=“남자 분들은 공감해도 겉으로는 표현을 못한다.부산국제영화제 때 중년남성이 찾아와 ‘이런 류의 영화를 처음본다며 너무 공감된다’고 하더라”
△장=“그래서 ‘진짜 공감한다고 말해도 되는 거예요?’라고 물으면서 웃었다.”

▲ 제작현장에서 다음 촬영장면을 논의하는 장우진 감독과 양흥주 배우.
▲ 제작현장에서 다음 촬영장면을 논의하는 장우진 감독과 양흥주 배우.

-영화가 어려운 편이었다.마치 사람의 머릿속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장=“어려운 것이 아니다.문학에서는 자유기술법도 있고 무의식의 기술법도 있다.영화에서는 잘 안 쓰는 방식이라 낯설다고 느낀 것이다.”
△양=“관객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봐야 되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영화가 어떤 이미지든 관객이 상상하는 그대로가 맞는 것이다.그걸 가져가고 고민하고 영감을 떠올리길 바란다.그게 생활의 활력소고 그걸 활용하는 게 나의 메시지다.

-양 배우가 장 감독의 뮤즈로 알려져 있다.실제 두 분 궁합은 잘 맞나.
△장=“형님이 스토리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준다.현장에서 만나면 이미 네댓번 촬영한 느낌으로 시작하는 것 같다.”
△양=“이해도가 깊은 상태에서 시작하니까 짧은 시간이어도 조금 더 갈 수 있다.모르는 것은 언제든 물어볼 수 있다.‘이런 작품 콘셉트가 있는데 해볼래?어느 장소에서 할까?’ 이런 식으로 얘기하니까 죽이 잘 맞는다.”

-두 분다 춘천에서 자랐지만 영화 속 춘천은 기존 이미지와 다르게 그려졌다.
△양=“‘춘천은 아편 같은 도시’.20대 때 함께 연극했던 선배들이 한 말이다.떠나면 그립고 오면 또 벗어나고 싶은 마약같은 도시라고….안개 피는 강가에서 술 한잔 기울이면서 들었던 얘기다.춘천을 워낙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낯선 느낌 없이 인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장=“직접 가보거나 공간에서 인상을 받지 않으면 스토리를 못 쓴다.다들 춘천을 관광지로 생각하지만 나고 자란 경험과 기억을 살렸다.제 세대가 모르는 경험과 지식들을 배우들이 던져준 것도 큰 도움이 됐다.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에서만 찍어 청평사에서도 낯선 풍경들을 많이 담을 수 있었다.”
진행/한승미·정리/양희문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