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우리 언어로 노래 할 그날을 기다리며
2015년 오성룡 등 8명 창단
대중과 가까운 오페라 지향
‘봄봄’ 접목한 첫 무대 성공
2019년 리투아니아서 공연
지역 담은 콘텐츠 제작 목표

▲ 2019 오페라 바스티아노 바스티아나 공연
▲ 2019 오페라 바스티아노 바스티아나 공연

작년 시월의 그날!봄·봄이 왔네

김유정문학촌은 김유정역에서 5분만 걸으면 닿을 곳에 있다.코로나가 창궐하기 전만 해도,한해 방문객이 50만 명이 넘었다.김유정이 태어나 활동했던 실레마을은 실제 지명과 실제 인물들이 고스란히 존재했던 곳이다.
그 중 욕장이 봉필이 영감과 그의 딸 점순이는 독특한 캐릭터로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2020년 가을,김유정 생가 담장 너머로 동백꽃 알싸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 김유정 생가 ‘봄봄’ 공연
▲ 김유정 생가 ‘봄봄’ 공연


봄, 봄, 봄, 봄
봄은 우리를 신나게 해요
봄은 우리를 기쁘게 해요

가을임에도 봄의 노래가 들려오는 곳이 김유정 마을이다.김유정문학촌 촌장인 이순원 작가는 작년 장편소설 ‘춘천은 가을도 봄’을 출간했다.소설 제호처럼 춘천은 언제나 봄인 고장이다.
김유정 생가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은 강원오페라앙상블 공연 모습이다.봉필영감과 머슴인 길보가 서로 붙잡고 뒹구는 장면이 한창이다.

장인어른∼장인어른∼
장가들여줘요
장가들여줘요
장가, 장가, 장가, 장가!

▲ 2020 토스카 공연
▲ 2020 토스카 공연

마당극 형식의 이 오페라 ‘봄봄’이 시연된 해는 2016년 4월부터이다.그로부터 오페라 ‘봄봄’은 해마다 상설공연되었다.익살과 해학,재미있는 노래와 대사에 관중들은 함께 웃고 박수치며 즐거워했다.우리의 마당극과 오페라의 만남은 대중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그에 힘입어 2018년엔 창작극 오페라 ‘산골’을 선보였다.역시 김유정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반응이 의외로 놀라웠다.

호수의 도시에 오페라가 열릴 때

2015년 10월,여덟 사람이 한 카페에 모였다.테너 오성룡,베이스 심기복,소프라노 민은홍,메조소프라노 이소라,피아니스트 전상영,연출가 용선중,공연기획자 오홍석 등이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오페라,마니아층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오페라를 지향했다.강원오페라앙상블은 그렇게 하여 창단되었다.단장은 오성룡이 맡았다.
오스트리아,이탈리아,독일 등지에서 활약하던 춘천 출신 성악가와 피아니스트가 뜻을 모았다.개성 있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모여 의기투합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그것도 대중에게 무척 생소한 오페라의 기치를 들고서.
일단 눈과 귀에 익은 우리의 마당극에다 오페라를 접목한 ‘봄봄’을 첫 무대로 올렸다.대성공이었다.
관중은 전혀 낯설어하지 않았다.모차르트가 열두 살에 작곡한 오페라 ‘바스티아노 앤 바스티아나’는 춘천은 물론이고 일본 돗토리현에서도 대성황을 이루었다.

▲ 오성룡 강원오페라앙상블 단장
▲ 오성룡 강원오페라앙상블 단장

2018년 전문예술가단체 선정과 더불어 2019년 축제극장 몸짓 상주단체로 선정된 것은 강원오페라앙상블로선 획기적인 일이었다.게다가 후원회 ‘텐즈 클럽’이 결성되어 매해 천만 원의 후원금이 들어왔다.기업가,대학교 교수,의사 등이 주축이 된 이 후원회는 강원오페라앙상블의 제일 큰 힘이 되어 주었다.
2018년 평창대관령음악제 프렌드쉽 콘서트,창작오페라 ‘봄봄’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 창작오페라 ‘산골’과 2019년 ‘바스티아노 바스티아나’,‘나도 성악가다’ 등이 공연되었다.그중 가장 인상 깊은 공연은 2019년 10월 국제교류 행사로 리투아니아에 갔을 때였다.
유럽은 오페라의 본향인데 그곳에서 우리의 ‘봄봄’을 공연하다니 한편으론 가슴이 벅찼고 한편으론 불안하고 초조했다.언어가 소통되지 않는 대사,그리고 그들에겐 이국적인 낯선 창법.이것이 과연 그들에게 통할 수 있을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끊임없는 박수를 출연자들에게 보내주었다.
한국의 오페라가 서구의 오페라를 뒤덮은 느낌이었어요.
단장 오성룡은 지금도 그 울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말로 할 수 없는 감동 그것 하나로 귀국길에 올랐을 때 단원들은 장밋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2020년,오랜 침묵이 찾아왔다.코로나19가 폐쇄와 마스크와 비대면을 불러왔다.모든 공연이 취소되었고,연습조차 한데 모여서 할 수 없었다.7월 말 상상마당 야외무대에서 한 여름밤의 아리아가 공연되었을 때는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9월이 되자 가까스로 도내 초중고교를 찾아다니며 오페라 공연을 할 수 있었다.단원들은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별처럼 아름답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시월부터 ‘봄봄’을 김유정문학촌에서 상설공연하기 시작했고,12월엔 오페라 ‘토스카’를 무대에 올렸다.모두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켰다.드문드문 띄어 앉은 관객이 그토록 마음 깊이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코로나 확진자가 천 명이 넘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또다시 암울한 침잠이 찾아왔다.한없는 수렁으로 깊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 강원오페라앙상블 연습실
▲ 강원오페라앙상블 연습실

텅 빈 연습실에 홀로 앉은 사람

내가 오페라앙상블의 연습실 문을 열었을 때 연습실은 텅 비어 있었다.피아노 한 대와 빈 악보대와 빈 의자가 정연하게 놓여 있을 따름이었다.단원은 보이지 않고 오직 한 사람,오성룡 단장만이 나를 맞이했다.
나는 오성룡 단장이 연습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해 있을 줄 알았다.풀이 죽어서 어깨가 축 처져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담담히 말을 꺼내기 시작한 오성룡 단장은 올해의 계획을 하나하나 펼쳐 보여주었다.


작년 12월에 가까스로 ‘신영공주’가 쇼케이스인 무관중으로 공연된 것에 단장 오성룡은 많은 배움을 얻었다고 했다.
곰곰이 하나하나 살폈어요.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우리의 오페라가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요.
신념은 자신감을 낳는다.그의 담담한 어조는 봄볕처럼 따스했다.나는 그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단원들은 최고의 연기자이고 최고의 성악가이며 최고의 연주자임을 자부합니다.
단원들에 대한 끝없는 신뢰가 강원오페라앙상블을 지탱하는 힘임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콘텐츠를 내놓고 그것을 다시 예술의 경지로 승화하는 작업.그것이 창작 오페라 ‘신영공주’에서 유감없이 발휘될 것이라 굳게 믿는 듯했다.
우리 지역의 상징적 이야기를 오페라로 이루어내는 일은 매우 어렵고도 힘겨운 일이다.하지만 서구의 오페라에만 매달려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새로운 우리의 오페라를 만들어 우리의 예술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단장 오성룡의 생각인 듯했다.
메이드 인 춘천 오페라 ‘박쥐’.그것을 춘천의 대표 문화콘텐츠로 만들겠다는 큰 포부.그것은 야망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하는 소박한 꿈이었다.오랜 침잠이 오히려 역으로,새로운 의지와 희망의 불씨가 됨을 오성룡 단장은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석양과 호수,그리고 오페라와의 만남.
낭만과 판타지의 매력적인 도시를 꿈꾸는 오성룡은 텅 빈 연습실에서 황금나무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였다.

<시인·춘천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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