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시단 흐름 한 권에…
양양 출신 이혜원 교수 등 엮어
안현미·김개미·성희직 등 포함

2020년 한 해 나온 문예지에 발표된 시 작품 중 전문가들이 꼽은 좋은 시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맹문재 안양대 교수,임동확 한신대 교수,양양 출신 이혜원 고려대 교수가 89편의 시들을 적당한 분량의 시평과 함께 실은 ‘2021 오늘의 좋은 시’다.지난 해 시단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동시에 도 출신 시인들의 시도 여러 편 감상할 수 있어 반갑다.
 

이혜원 교수가 고른 태백 출신 안현미 시인의 시 ‘카만카차 19’는 지난 해 유행한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시들 속에서도 눈에 띈다.칠레에서 쓰는 이국적 단어와 피노체트 정권에 저항했던 세풀베다 등을 제목과 시구에 인용한 작품에서 안 시인은 “끝끝내 삶은 죽음을 걸고 싸우는 일 자!월요일이에요 ‘세상 끝 등대’에 불을 켜고 우리 살러 갑시다”고 힘주어 썼다.이 교수는 이에 대해 “지친 마음에 힘을 주는 애틋하고 아름다운 선동”이라고 했다.

인제 출신 김개미 시인의 ‘나의 천사’는 화자가 깊이 사랑하지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내가 잠든 새벽 천사가 날개를 펴본다는 것”을 아는 시 속의 ‘나’는 아프고 서운한 현실도 담담히 마주한다.시 속 천사를 가족과 친구,연인 혹은 나 자신에게 대입하다 보면 삶이 서늘해지는 기분이다.

지난 해 사북항쟁 40주년을 기념하는 시집 ‘사북 골목에서’ 내기도 한 맹 교수는 정선의 성희직 시인(전 도의원)이 쓴 ‘광부2’를 골랐다.“전생에 그 무슨 죄 지었기에/두 개의 하늘을 이고 사는가”라는 첫 문구에서부터 광부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느껴진다.맹 교수는 “산업발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위해 헌신한 광부들이 이고 살았던 ‘두개의 하늘’은 어둡고도 무겁다”는 평을 덧붙였다.

춘천 출신 박제영 시인은 ‘카톡왔숑,왕년은 어디로 갔나’에서 단체 대화방을 두드리는 많고도 작은 대화알림을 서러운 삶 속 위로를 구하는 소리로 듣는다.“생각하면 너나없이 서러운 것인데/괜찮다 괜찮다며/카톡왔숑 카톡왔숑/오늘도 징징거리며/서로의 안녕과 안부를 묻는 것인데”라는 마지막 구절에서 그런 생각이 명확해진다.

정선 출신 최준 시인의 ‘현관의 수사학’도 포함됐다.가족들이 드나드는 현관 앞 신발장,그 속에 갇히고,떠나고,찾아드는 신발들을 보며 “흔적 없는 시간의 무늬들”을 생각한다.“나간다와 들어간다/사이에 신발장이 있”기 때문에 신발이 주는 시공간의 기억들 역시 사라지기도 하고 남기도 하는 것 아닐까.“어떤 신발은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고/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중얼거리며/오늘이 마지막인 듯 신발장을 여는/아침이 있다”는 표현에서 괜스레 신발 속 발을 힘주어 오므려 보게 된다.임 교수는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제대로 의식하는 자만이 구속된 삶의 시간 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신발장의 신발들인 셈”이라고 했다,

3명의 엮은이들은 “난해한 작품들이 워낙 많이 발표되고 있어 시인들의 창의성을 어느 정도로 수용할 것인가는 참 어려운 문제”라며 “작품의 우열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시단의 흐름을 나름대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김여진 beatle@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