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김광섭 향토사학자 인터뷰

▲ 김광섭(56) 청간정자료전시관장은 1998년에 각종 고성지역 역사관련 자료수집을 시작해 20년 넘게 향토사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 김광섭(56) 청간정자료전시관장은 1998년에 각종 고성지역 역사관련 자료수집을 시작해 20년 넘게 향토사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김광섭(56) 청간정자료전시관장은 1998년에 각종 고성의 역사관련 자료수집을 시작해 20년 넘게 향토사 연구에 천착하면서 지역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고 있다.추석을 맞아 김광섭 향토사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향토사 연구에 입문한 계기는.

“1998년부터 항토사 자료 수집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규장각을 40번 정도 갔다.고려대에서 1936~1937년 통계연보인 고성군 군세 일람을 찾았고,이화여대에서 화진포 고인돌 관련 자료를 확인하는 등 서울소재 대학에도 수차례 갔다.자료 수집된 것을 바탕으로 2004년 돼서야 성과 알리기와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시작했다.다음카페에 글을 올렸는데 고성군지에 수록된 내용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면서 토론이 열띠게 진행되고 이슈가 됐다.1~2년 정도 후에 나름대로 카페를 만들어 유지하게 됐다.2007년 7인 주축의 고성향토문화연구회를 만들었고,1년 뒤인 2018년 인원을 보충한 후 10명 이상이 참여해 창단식을 열었다.당시 회장은 남숙희,부회장은 신승택·손미자,사무국장은 유재일이었고 나는 연구이사로서 역할을 수행했다.연구회에서 ‘풍암’ 1호와 2호를 만들었는데 현재도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향토사 연구 실적을 소개해 달라.

“강원도문화원연합회 향토연구논문 발표대회를 통해 10편의 논문을 세상에 내놓았다. 2010년 최우수상,2016년 우수상,2018년 최우수상을 받았고 그밖의 논문도 장려상과 노력상을 받았다.2009년 처음 발표해 노력상을 받은 논문에서는 선유담을 다뤘다.1330년 안축이 ‘선유담을 지나면서’라는 시에서 ‘바쁘단 이유로 그냥 지나친다면 다시 찾을 때 얼굴을 감출까 두렵다’라고 표현했다.실제로 10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선유담은 육지화 돼 논밭으로 변하고 있어 옛 시인이 예견한 것처럼 느껴진다.석호는 중요한데 관리를 못해서 이렇게 된 것이라 생각돼 안타깝다.2010년 최우수상을 받은 논문은 ‘만경대’를 다룬 것이다.청간정에 가려져 있으나 수많은 시인묵객이 찬양한 만경대가 지금은 군부대 내에 있어 일반인이 볼 수 없다.가치에 비해 알려져 있지 않고 아는 이가 없는 게 안타까워 만경대를 재조명하는 논문을 썼다.2016년에는 소파령 혹은 석파령을 다룬 논문으로 우수상을 받았다.고성에서 영서지방으로 가는 큰 고개가 4개 있다.미시령은 1530년,선유령은 1546년,진부령은 1632년에 만들어졌다.소파령은 현재는 사람들이 자동차 등으로 다니지는 않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져 먼 옛날에는 유일한 통로였다.”

-2018년 발표 논문의 내용은 무엇인가.

“당시 최우수상을 받은 논문은 화암사의 역사를 다룬 것인데 수바위의 유래를 밝혔다.수바위를 나타내는 한자는 목숨 수(壽),벼이삭 수(穗),물 수(水),배어날 수(秀) 등 4가지이다.수(穗)바위의 경우 널리 알려진 내용인데 어느날 화암사 스님의 꿈 속에 노인이 나타나서 바위의 구멍을 돌리면 쌀이 나올거라고 일러줬다.막대기로 두번 돌릴 때마다 두 사람이 먹을 량이 나왔다.그 때부터 식량 걱정이 없었다.어느날 다른 사찰의 스님이 와서 “쌀을 어떻게 구하냐”고 물었다.화암사 스님이 사연을 말해줬고 막대기로 돌리니 진짜 쌀이 나왔다.그러자 손님인 스님이 “구멍을 더 크게 하면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해서 구멍을 넓혔더니 쌀 대신 피가 나왔고 이후 쌀은 나오지 않게 됐다.”

▲ 김광섭(56) 청간정자료전시관장은 1998년에 각종 고성지역 역사관련 자료수집을 시작해 20년 넘게 향토사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 김광섭(56) 청간정자료전시관장은 1998년에 각종 고성지역 역사관련 자료수집을 시작해 20년 넘게 향토사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논문발표대회 이외에 번역작업 등 업적은.

“2018년에 고성지역 독립운동사를 집필했다.지역내 독립운동가로 20여명이 확인된 상황에서 60여명을 더 찾았다.신문조서,형무소 기록,재판기록 등을 토대로 확인한 것이다.출생지의 번지수까지 기록했다.의병활동자도 다수 수록했다.2012년에는 ‘청간정’ 책자를 만들었다.내용이 알차서 인기가 좋았고 그 영향으로 청간정자료전시관이 생기게 됐다.2011년에는 이병연이라는 사람이 1935년에 쓴 ‘조선환여승람’이라는 책을 국역했다.이 책에 언급된 곳은 도내에서 춘천,원주,강릉,영월,정선,고성 등 6곳뿐이다.이병연은 당시 ‘나라는 빼앗겼지만 역사는 지켜나가자’는 취지로 110명을 동원해 자료를 수집해 자비로 이 책을 만들었다.조선환여승람에는 지역 명소,학교,정치,경제,문화,예술 등 다각적인 내용이 수록됐고 당시 철도 이야기도 들어있다.”

-향토사 연구를 위해서는 한문 지식이 필요한데.

“50년간 어부생활을 한 부친이 서당에서 겨우 천자문을 뗐는데,내가 초등학생 시절 세숫대야에 모래를 담아 물을 뿌리고 글자를 한 자 쓰고 “이건 무슨 자다”라고 가르쳐 주셨다.그리고 지우고 또 알려주셨다.종이와 붓 없이 한자를 배웠다.공부는 반복이다.중학교에 올라가서 한문 시간에 선생님이 읽어보라고 하면 막힘 없이 읽고 풀었다.배우지 않은 내용까지 다 읽었다.고등학교 때 한문 선생님이 ‘군계일학’이라고 칭찬했다.고교시절 이미 한자 3000자를 알았다.역사공부를 하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글자를 모르면 낮에도 밤길 걸어가는 것과 같다.”

-향후 목표가 있나.

“요즘에는 오는 10월 1일 열리는 ‘금강산 옛길 및 조제암의 복원가치와 남북교류 활용방안 학술세미나’에서 ‘금강산 옛길과 건봉사’ 연구주제발표를 하기 위해 준비하느라 바쁘다.고성군과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가 진행하는 금강산순례길 복원사업이 잘 진행돼 지역발전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부친께서 50년을 어부로 사셨으니 ‘고성 어촌민속지’를 만드는 게 꿈이다.조선시대에 쓴 기행문을 보면 고성지역 어촌의 바위이름,명소,선박 구조 등을 설명한 것이 많고 일제시대에 어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어놓은 자료가 방대하게 남아있다.이것들을 정리해서 고성의 옛 바다 이야기를 생생하게 남겨놓고 싶다.금강산 4대사찰 가운데 신계사,유점사는 고성군에 있고 장안사,표훈사는 회양군에 있다.여기에 중요한 사찰인 정양사와 남한에 있는 건봉사까지 총망라한 금강산 사찰 연구를 마무리 짓는게 남은 또 하나의 목표다.이밖에 삼일포,총석정에 대한 연구를 해서 결실을 거두는게 남은 가장 커다란 숙제다.”

이동명 ld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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