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와 도시가스에 자리를 내줬지만 매서운 겨울 추위를 덥혀주는 상징으로 연탄만 한 것이 없다. 붉게 이글거리는 열기는 따스함 그 자체다. 에너지로 다 쓰고 난 재는 덩어리째 길에 던져지곤 했다. 빙판길 예보가 있으면 염화칼슘부터 뿌리는 요즘이지만 이전엔 연탄재로 고루 펴서 비탈진 통학 통근 길을 무사히 다닐 수 있었다. 가난한 시대를 상징했던 연탄이 지금은 가난함의 대명사가 됐다.

1970년 태어나 중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한 남성에 대한 집중 연구가 있다. 어릴 때 항공모함 장난감을 얻지 못한 좌절감을 시작으로 학업을 위해 참고서를 살 수 없는 무기력과 상실감, 가계 부담을 모두 책임진 어머니를 돕지 못하는 학생 신분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성장했다. 결혼해서는 국제 구제금융사태가 덮쳐 유모차와 바나나도 사줄수 없어 남편과 아버지로서 자책감이 컸다. 대리운전 기사 일을 하는 스스로에 대해 안쓰러움 대견함이 교차하는 감정에 놓여있었다. 박찬중 연구자는 그의 생애를 가난과 떠돌이 삶의 대물림을 자녀세대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끊어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밝혔다.

가난은 경제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친구를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는 주변 관계는 물론 자기 존재감과 정신적 측면까지 영향권에 있다. 가난을 물려받은 숱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에게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애써왔으나 애초부터 ‘단절’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학력과 돈이 많을수록 자녀도 부유함을 누리는 사회구조이기 때문이다. 청년문제도 양극화 사회 부유함의 대척점에 놓인 청년에 집중해야한다.

사회복지와 종교 등 제한된 지원만으로 빈곤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가난은 나라님도 구할 수 없다’라는 신화에 아무 의심 없이 굴복해도 되는 걸까? 오히려 현시대의 유일한 해결사는 국가(지자체)라는 공공영역이다. 적어도 빈곤 탈출의 지름길이 부모여서는 안된다. 그날그날 벌어 살아내야하는 이들이 조금 더 힘을 내도록, 당당하도록 전방위적인 공공 조처에 언제까지 인색할 것인가. 박미현 논설실장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