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무이사 원주본사 본부장
▲ 상무이사 원주본사 본부장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에 지난 밤 내린 눈으로 하얗게 바뀐 원주 봉화산 등산길을 이른 아침에 걸었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이라 사방은 깜깜하지만 눈이 등산로의 길동무를 해준다. 낙엽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면 나는 ‘사박사박 뽀드득’ 소리가 정겹다. 눈길을 따라 걸으며 나보다 앞서 지나간 이의 발자국을 옆에 피해 나는 나대로 발자국을 남긴다.

유튜브를 통해 소통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김창옥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꽤나 유머스럽게 시대를 잘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오늘 등산로를 걸으면서 들은 김 교수 강의는 ‘형 이야기 가족 이야기’로 나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가족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소통하고 양보하는 세상을 이야기 하는 데 그런 세상이 나도 그립다. 김 교수 강의를 들으며 30여분 정도 걸어 아직 신축년 섣달 보름달이 떠있는 봉화산 정상에 올랐다. 알싸한 겨울 공기가 뺨에 스쳐 콧등에 송골송골 맺은 땀을 한방에 날려 보낸다.

섣달 보름달을 휴대폰으로 촬영한 뒤 최근 새로 설치한 봉화산 정상 데크에서 치악산 비로봉 남쪽 기슭의 붉은 여명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두 손을 모아 모두의 행복과 건강을 빌었다. 내려오는 길은 깜깜하게 오를 때와는 다르게 어둠이 걷힌 세상의 하얀 눈밭이었다. 남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등산로를 택해 나만의 발자국을 남긴다. 그래도 나보다 더 부지런한 한사람의 발자국을 시샘했다.

세상이 다 그런 것 나만의 세상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겨울 아침 눈 덮인 산은 정말 멋지다. 낙엽을 덮은 하얀 눈과 소나무 가지에 소복이 내려앉은 눈, 그리고 잎이 떨어진 앙상한 참나무에 얹혀 있는 눈을 보며 잘 그려진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듯 내려왔다.

하지만 아침 신문을 보는 순간 멋진 수채화를 감상만 하기엔 세상이 어지럽다. 대한민국 5년을 책임질 대선을 50일도 남지 않은 현재, 후보는 물론 여야 그리고 그 주변의 인물들이 사즉생의 각오로 마주보고 오는 달리는 기차처럼 전속력으로 마주치고 있다.

시쳇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이다. 대장동 의혹, 형수 욕설, 아들 도박, 무속인 논란, 후보부인 허위경력, 후보부인 녹취 방송 등등 손으로 꼽기가 민망할 정도로 막장 대선이다. 정책 경쟁은 어디가고 양쪽 진영으로 나눠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보는 소인배들이 난무하는 난세다. 조선 중기 당파싸움을 방불케 한다.

눈길 내려오면서 백범 김구 선생 애송시로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 사명대사 작품으로 알려진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내린 들판을 걸을 때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 한시(漢詩)는 백범 선생이 친필휘호로 남긴 것을 문재인 대통령 집권 후 청와대 여민관 복도에 걸려 화제가 됐었다. 한 시간 정도 짧은 산행이었지만 이 시의 의미를 생각하며 내 자신을 반추해본다.

누가 보지 않아도 똑바로 살고 있는지 혹여 내 행로가 뒤에 올 누군가를 어지럽히지는 않는지. 그래서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똑바로 살자. 내 인생이 다른 인생의 이정표가 될수 있다는 것 등등.

혹여 위정자들도 저 시를 염두에 두고 눈길을 걸으면 어떨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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