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 바다열차 2년 뒤 중단
동해안 관광효자 잃을 위기
빠름만 추구, 느림 외면하다가
바다 낭만까지 빼앗길까 걱정
새 열차 제작비 분담 해결 기대

홍성배 강릉본사 취재부국장
홍성배 강릉본사 취재부국장

강릉 관광의 중심지 중 하나이며 국내 최고의 해돋이 명소 정동진.

강릉 정동진은 경복궁에서 정 동쪽에 위치해 있는 나루라는 뜻의 지명이다.

정동진이 유명세를 탄 것은 1995년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로 시작됐다.

사실 정동진은 해안가에 위치한 탄광지역으로 당시만 하더라도 도로변에 무연탄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저탄장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다. 석탄산업 합리화로 폐광이 되면서 마을은 전성기를 잃었고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났다.

파란색 천막에 덮혀 있던 무연탄은 거센 바닷바람에 시커멓게 날리곤 했으며 마을주민들은 농사와 어업을 병행하며 살았다.

바닷가 도로변의 땅값은 평당 5000원에서 1만원 정도 할 정도로 비교적 싼 편이었다.

그러던 정동진이 모래시계가 ‘귀가시계’가 될 정도로 인기가 폭발하면서 정동진의 간이역, 소나무가 관광지로 바뀌었다.

정동진이 국민관광지로 진짜 뜨기 시작한 것은 정동진 해돋이 열차가 청량리에서 출발하기 시작하면서다.

자정 무렵. 청량리발 강릉행 열차는 육중한 몸을 일으켜 제천, 태백 등을 거쳐 새벽 어스름한 여명이 비출 때 강릉에 진입했다.

해돋이 열차 안에는 청춘남녀가 쌍쌍이 앉아 어깨를 기대며 밤새 소곤 거렸다. 그렇게 5시간쯤 달려온 새벽열차는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 정동진역에 도착했고 관광객들은 열차에서 내리자 마자 장엄한 해돋이를 볼 수 있었다.

무박의 열차는 연인들에게는 숙박과 낭만을 제공했고 가족들에겐 설렘과 희망을 안겨줬다.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정동진에는 상가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이후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산 위에 마치 배가 떠있는 것처럼 만든 호텔은 강릉 관광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정동진의 해돋이 열차는 25년을 달려오다 지난 2020년 3월1일 마지막 무궁화 열차가 운행되면서 막을 내렸고 청량리발 무궁화는 동해역까지만 도착하고 있다. 동해에서 정동진으로 가기 위해서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정동진 무궁화호가 사라진 것은 2018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면서 KTX강릉선 열차가 개통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KTX를 타고 1시간 30분이면 강릉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량리에서 강릉까지 이어지던 무궁화 열차가 운행중단되면서 강릉에서 태백으로 가는 열차도 자연스레 끊어졌다.

이때문에 겨울산의 백미로 꼽히는 태백산을 보기 위해 눈꽃열차를 타고 태백으로 향하곤 했던 등산객들의 낭만도 상실됐다. 2시간 정도 걸리는 열차는 삼척 심포에서 태백 통리 재를 넘어갈 때 지그재그로 운행됐다. 이른바 스위치 백이다. 평지와 산악의 고도차가 너무 심해 열차가 시계 추처럼 왕복하면서 재를 넘었다. 빠른 열차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어서 모두들 신나한다. 그러나 이런 열차를 강릉에서 논스톱으로 이용할 수 없다.

정동진 임시 해돋이 열차와 눈꽃열차의 중단에 이어 2년 뒤면 못 보게 될지도 모를 열차가 하나 더 있다.

‘동해선 바다열차’다. 강릉에서 동해, 삼척을 오가는 바다열차는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하며 갈 수 있도록 의자를 옆으로 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런 열차가 노후 돼 교체가 불가피하지만 새 열차 제작비가 많이 들어 열차 운행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코레일은 열차의 안전운행을 위해 30년이 넘으면 폐차를 해야 하며 신차를 도입할 경우 13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 열차가 운행되는 지자체에서 일부 제작비 부담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는 제작비의 절반인 60억원을 분담하기는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관광전용열차로 운행된 바다열차는 2007년부터 15년간 연간 13만여명의 관광객을 태운 동해안의 대표적 ‘관광효자’다.

이런 열차를 멈춰 서게 한다는 것은 누구의 손해를 떠나 사람들에게서 바다에 대한 동경과 낭만을 빼앗을까 걱정이다.

최근 강릉과 제진을 잇는 동해북부선이 착공돼 오는 2027년이면 유라시아로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이에 발맞춰 부산~강릉, 수서~강릉, 목포~강릉 등 강릉 중심의 열차 교통망 시대도 도래한다. 부산에서 강릉까지 2시30분이면 주파가 가능하다. 이른바 빠름의 시대다. 그러나 빠름만 선택하고 느림을 외면하다 보면 그 느림이 ‘보석’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을지도 모른다.

코레일과 강원도,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 ‘바다열차’에 대한 해법을 찾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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