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진 장편소설 ‘밤의 그늘’

어두운 밤, 그 밤에도 그늘이 존재한다면.

고성 거진 출신 이서진 소설가의 장편소설 ‘밤의 그늘’은 분단과 이데올로기로 뒤얽힌 개인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은 허상만의 손자인 기준과 그의 아내 선영의 교차 시점을 통해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세 집안에 걸친 복잡한 가계도를 그리고 있다. 이제는 희미해진 분단문학의 줄기를 욕망이라는 주제 아래 잡아가는 작가의 고집이 엿보인다.

1932년 늦가을 함경도 원산 내안이라는 마을에 찾아든 혼성 사당패의 여인과 허상만의 관계로 낳은 딸 유나타샤(허진애)는 월북무용가로 이름을 알렸다. 남쪽의 세 집안은 그녀로 인해 긴긴 애증의 세월을 살아야 하는데, 작가는 이를 추적하는 ‘선영’의 시선을 통해 그 시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각 인물들이 가진 환부를 드러낸다. 유나타샤의 모티브는 월북 무용가 최승희로부터 얻어온 듯 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기준의 아버지 허재표와 출생의 비밀을 안고 살아온 그의 동생 진표의 모습은 비극의 차원을 넘어 더 근본적인 삶의 차원을 되묻게 만든다. 딸의 월북으로 연좌제의 굴레가 두려워진 허상만의 행동은 연이은 비극을 낳는다. 국가의 이데올로기 또한 욕망의 집합체로 작용한 셈이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대학교수이자 외도를 일삼는 남편 기준 또한 선영에게는 사회적 욕망이다. 인물들의 이름도 흥미로운데, ‘허상만’은 허상, ‘허기준’은 가짜 기준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납북과 월북 사건이 빈번했던 고성 거진지역에서 자란 이 작가는 2008년부터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 작가는 “소설은 허구이지만 누군가는 분단 문제를 얘기해줘야만 한다”며 “통일이 된다 해도 전쟁의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전달자로서 소시민들이 겪어온 상처와 삶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설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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