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웅의 풍수유람 ⑫ 최초로 명당에 영면한 전직 대통령, 노태우 묘소

노태우(盧泰愚 : 1932년 ~ 2021년 10월).
1955년 2월. 육사졸업(11기).
1981년 7월. 대장진급 및 전역.
1983년 7월.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
1985년 2월. 제 12대 총선에서 전국구로 당선.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1985년 12대 총선에서 야당은 돌풍을 일으켰다. 여세를 몰아 대통령 직선제 개헌 1,0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한다. 이후 여·야의 개헌논의가 지지부진함을 빌미로 전두환은 1987년 4.13호헌 조치를 발표한다. 차기 대통령을 직선이 아닌 간접선거로 선출하겠다는 의도였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열망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6월 항쟁’의 불길이 전국에서 타올랐다.

6월 29일, 민정당 대표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한다. 민주화 세력은 양김이 분열하고, 그해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하 경칭생략)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후에는 건강 악화로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노태우는 2021년 10월 26일 사망했고, 12월 9일 파주에 있는 동화경모공원에 안장되었다. 먼저 대구에 있는 노태우 선영을 살펴보자.

▲ 노태우 조부모 묘소. 대구 동구 신용동 소재.
▲ 노태우 조부모 묘소. 대구 동구 신용동 소재.

노태우 조부모 묘소. 대구 동구 신용동 소재.

노영수 (盧永洙 : 1883~1966년)와 소산옥(蘇山玉 : 1887~1975년).

조부모 묘소는 노태우 생가가 있는 신용동 용진마을 뒤쪽으로 올라가면 산진처(山盡處: 산이 끝나는 부분)에 자리한다.

▲ 조부모 묘소로 진입하는 개략(槪略)적 맥로도.
▲ 조부모 묘소로 진입하는 개략(槪略)적 맥로도.

조부모 묘소로 진입하는 개략(槪略)적 맥로도.

맥로의 출발은 영천(永川)에서 시작하여 팔공산의 갓바위지구를 경유하고 가까이로는 거저산을 넘어온다.

▲ 세부적인 맥로도.
▲ 세부적인 맥로도.

세부적인 맥로도.

묘소 하단에 있는 과수원을 따라오던 맥로가 조부모 묘소 앞에서 방향을 틀어 거슬러 올라간다. 맥로는 묘소 앞에서 분지(分枝)하여 각각 두 묘소로 진입한다. 맥로이론의 회절수로는 모두 11회절 명당이다. 노태우가 4성 장군과 대통령이 된 것에는 TK라는 지역과 인맥의 도움 이외도 조부모 묫바람의 풍수적 뒷심도 상당히 작동했을 것이다.

▲ 노태우 부모님 묘소. 대구 동구 송정동 소재.
▲ 노태우 부모님 묘소. 대구 동구 송정동 소재.

노태우 부모님 묘소. 대구 동구 송정동 소재.

노병수(盧秉壽:1910~1938년)와 김태향(金泰香 : 1909~1999년).

부친은 젊은 나이에 부모님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노태우가 소령에서 오랫동안 진급이 안되자 부친 묘소를 이장했다는 소문이 있으니, 이장 후에는 월남전에서 무공도 세우고 진급이 순조로웠다는 것이다.

부친 묘소에 대한 풍수 선생의 평가를 들어보자. “우측에는 일자문성(一字文星)이 있고, 좌향도 제대로 맥을 따라 썼고, 좌청룡이 겹겹이 둘러쳐 있다. 수구(水口)에는 독봉(獨峯)이 우뚝 막아주어 돈도 있고... 이장 이후 상주(노태우)에게 힘이 되었겠다”

 

 

▲ 노태우 부모 묘소 후경.
▲ 노태우 부모 묘소 후경.

 

노태우 부모 묘소 후경.

필자의 견해로는, 맥로가 묘소 백호방을 지나 뒤로 올라가서 명당을 맺고, 묘소는 이 명당에 상응하는 흉에 걸렸다.

부친 한 분만 모셨을 때는, 그 흉의 기운이 청장년 시절의 노태우에게 작동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1999년 모친을 부친 옆에 쌍분으로 모시니 흉의 기운이 배가(倍加)되어 불운이 발생한다. 모친을 장사지낸지 3년만에 노태우는 난치병에 걸려서 회복하지 못하고 별세한 것이다.

흉지에 합장하여 불운(不運) 급증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열거한다.

1. MC 허참 부친 2004년 9월졸, 모친 2021년 3월졸, 본인 2022년 2월졸.

2. 세아제강 이운형 회장 부친 2000년 12월졸, 모친 2012년 6월졸.

본인 2013년 3월졸.

3.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부친 2002년 11월졸, 모친 2016년 12월졸,

본인 2019년 4월졸.

5일장을 마친 노태우의 유해(遺骸)는 파주 탄현면의 장준하 추모공원 근처의 검단사에 임시로 안치하였다. 유족들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북한이 바라다 보이는 곳을 장지로 희망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통일동산 근처에 있는 동화경모공원에 노태우의 귀숙처(歸宿處)를 정했다.

이곳은 이북 실향민들이 망향의 한과 통일의 염원을 담아 조성된 곳이다.

이북을 고향으로 둔, 유·무명의 실향민들의 묘소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곳이다. 노태우의 유지(遺旨)에도 부합하는 장소인 듯하다.

 

 

 

 

▲ 노태우 대통령 묘소. 2021년 12월 9일 안장.
▲ 노태우 대통령 묘소. 2021년 12월 9일 안장.

 

노태우 대통령 묘소. 2021년 12월 9일 안장.

 

 

 

▲ 맥로도.
▲ 맥로도.

 

맥로도.

묘소의 남서쪽 멀리에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는 곳이 보인다. 맥로는 그

합수처 뒤에서 출발하여 동북쪽을 향해 진행해 온다. 가까이 보이는 검단산을

넘어온 맥로가 묘역 청룡방의 정자가 있는 곳에서 방향을 틀어 진입한다.

핵심 혈처의 여기(餘氣)에 모셨지만 11회절 대명당이다. 후손들에게는 적지

않은 풍수적 뒷심을 줄 것이란 판단이다.

노태우는 역대 대통령 중에 처음으로 명당에 영면(永眠)하게 되었다.

 

 

 

 

▲ 대구 신용동의 노태우 생가.
▲ 대구 신용동의 노태우 생가.

 

 

 

대구 신용동의 노태우 생가.

몇 년전에는 관리가 안되어 쓰러질 듯 초라한 모습이었다. 최근에 답사해보니 깔끔하게 정리했다. 집안 전체가 명당판 안에 들었지만 특히 노란색으로 표시한 안방이 엄청난 대명당의 핵심에 정확히 자리한다.

사족(蛇足)

 

 

 

 

▲ 노태우 대통령 신후지지(身後之地, 살아있을 때에 미리 잡아 둔 묏자리).
▲ 노태우 대통령 신후지지(身後之地, 살아있을 때에 미리 잡아 둔 묏자리).

 

노태우 대통령 신후지지(身後之地, 살아있을 때에 미리 잡아 둔 묏자리).

최근에 답산을 해보니 조부모님 묘소 앞에 만들어 놓았던 수묘(壽墓, 신후지지와 같은 뜻)는 평평하게 없애 버렸다. 천만다행이다. 확인한 바로는 명당인 조부모 묘소에 상응하는 흉지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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