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히 볕 드는 모퉁이 가게… “누군가를 안아주는 공간 되길”
유년 시절부터 글쓰기에 재능
소설·에세이 다양한 장르 섭렵
절필기간 ‘손안의 나비’ 된 기분
시 쓰며 재생의 과정 다시 겪어
엄마에 관한 포토시집 구상

“시를 쓰며 리듬 되찾아
 사라졌던 ‘나’ 회복
 나 다운 내가 되어간다”

▲봄날에 연애 전경
▲봄날에 연애 전경

■사람들을 안아주는 공간
 

옛 시청길 골목을 걷다 보면 길모퉁이에 독특한 민트색 작은 카페 ‘봄날에 연애’가 눈에 들어온다. 봄날에 연애는 양선희 시인의 시집 제목이자 그가 좋아하는 블루로 꾸민 북카페다. 봄날에 연애는 푸른 하늘이 언뜻 보이는 구름 같은 천정도 그렇고 벽에 걸린 그의 사진 작품도 구름과 푸름이 가득하여 푸르름에 안겨있는 기분이 든다. 그곳에서 봄날처럼 환한,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 양선희 시인을 만났다.

“봄날에 연애는 지금 방학 중이에요. 제가 충전하기 위한 방학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주려면 제가 에너지 넘쳐야 하니까요. 카모메 식당, 바그다드 카페 같은 영화를 보면서 그런 카페를 운영하고 싶었어요. 골목길을 산책하다가 햇볕이 환하게 드는 길모퉁이 빈 상가를 보고 너무 좋아 뭘 할지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계약했어요. 이곳이 누군가를 안아주는 느낌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팔고 돈을 받는 게 힘이 들어 두 번이나 접으려 했지만 돈벌이를 위한 공간이 아니고 힐링 공간이 되길 바랐기에 동행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도서관처럼 책을 빌려주고 저자 사인본 위주로 책을 판매하며 시네마 토크, 에세이 교실을 진행하고 매월 일요일에 한번 1인 자영업자들이 참여하는 초록별 마켓을 열어 수익금의 10% 네팔학교에 기부하는 일은 변함없지만, 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 3시간 문을 열고 매년 최소한 한 달은 방학도 하며 자유롭고 느슨하게 운영하기로 했다.

봄날에연애 내부 모습
봄날에연애 내부 모습

■ 신들의 산책로에서 리셋하다

함양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님이 걱정할 정도로 항상 책을 끼고 자랐고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여 글 잘 쓰는 아이로 불렸다. 글 써서 칭찬받고 부모님을 기쁘게 하니까 글 쓰는 일이 좋았던 그는 줄곧 장래 희망이 시인, 작가였던 아이였다. 서울예술대학 입학 면접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나는 시는 잘 쓰는데 이론이 부족해서 이론을 공부하고 싶어 왔다’라는 당돌한 말로 면접관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며 입학했다. 그의 대학 시절은 자신을 깨고 다시 일으키는 시간이었다. 스승인 오규원 시인이 ‘자네 그거 시 아니네….’ 라고 말한 적도 있었고 노트를 가져가면 온통 빨간 줄을 그어 한 줄만 남은 때도 있었다. 스승은 동인 활동도, 친구들과도 어울리는 것도, 연애도 금했다. 오직 시와의 연애만 허용했다. 그간 굳어버린 타성을 깨기 위한 노력과 시간은 길었고 그만큼 오기가 생겼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는 머리맡에 잉크병, 펜, 시작 노트 손전등을 두고 자다가도 일어나 시를 쓰는 열정의 시간을 보냈다.

봄날에연애에서 만난 양선희 시인
봄날에연애에서 만난 양선희 시인

양선희 시인은 시와 소설, 시나리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작가다. 1987년 문학과 비평에서 시로 등단하고 출판사를 거쳐 방송작가로 일하다가 결혼하면서 방송일을 그만두고 원주에서 살게 되었다. 출산과 함께 1년 동안 쓴 소설을 출간한 후 육아를 하면서 글을 놓게 되었는데 그 시절 그는 손안에 갇힌 나비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보름 동안 손 인대가 늘어날 정도로 썼던 시나리오 ‘집으로 가는 길’이 동아일보 신춘에 당선되면서 그는 다시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다시 시를 쓰기 위해,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산문을 썼다. 직장암 수술을 받고 거동이 불편한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와 사진으로 엮은 ‘엄마 냄새’, 커피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힐링 커피’와 ‘커피 비경’을 썼다. 그러나 시는 원하는 대로 쓸 수 없었다. 그는 새로운 시를 쓰려면 나를 다시 깨고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그렇게 히말라야에 올랐고 봄날에 연애까지 왔다.

양선희 시인은 작년에 시집 봄날에 연애를, 올해 1월 히말라야 트레킹 이야기를 담은 사진 에세이 ‘리셋하다’를 출간했다. 그는 시를 잘 쓰기 위해, 시 감각을 깨우기 위해 ‘신들의 산책로’라고 불리는 길을 걷기로 하고 3년을 준비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험로의 고단함과 고산병을 겪으며 신들의 산책로에 오르며 무수한 고통과 대면하며 묵묵히 걸었던 여정은 그에게 수행이자 다시 태어나기 위한 재생의 과정이었다고 한다. 그 길에서 그는 다시 태어난 느낌을 얻고 돌아왔다.

시집 봄날의 연애는 대부분 그가 암투병과정에서 쓴 시지만 봄, 새 생명 같은 밝은 이미지와 그가 좋아하는 봄 이미지가 가득하다. “시를 쓰면서 리듬을 찾은 것을 느끼고 위트가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결혼과 함께 다 사라졌던 것들을 회복하는 과정이 좀 길었지만 요즘은 나 다운 내가 되어가는 것을 느껴요.”라고 말하는 그는 올해 유월 무난하게 암 완치 판정을 받을 것이다. 그의 리셋하다는 네이버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리셋하다를 내고 나서 얻고 싶은 건 다 얻은 느낌이라는 그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엄마를 닮고 싶었다는 그와 ‘나의 스승은 엄마고 유일하게 닮고 싶은 사람이 엄마’라는 딸을 둔 그는 올해 엄마에 관한 시와 사진을 담은 포토시집을 구상 중이다. 그동안 찍었던 구름사진과 함께 구름 시를 번역하여 외국에서 전시할 계획도 하고 있다. 그와 봄날에 연애는 4월 중순까지 긴 방학 중이고 그는 잠시 원주를 떠난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시인을 닮은 봄날에 연애로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설 당신을 맞으며 책을 나누고 시를 쓰며 느긋하고 환하게 봄을 살아갈 것이다. 시인·문화기획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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