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서구와 달리 출생과 동시에 한살로 인정하는 셈법을 같이 써온 지 오래됐다. 생명이 생긴 순간부터 배 안에 든 아이를 교육하는 전통문화를 반영한 것이라고도 하고, ‘0’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왕조시대 민간에서 ‘나이’가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과세와 부역은 지배의 중요한 방책이었고, 해당 나이에 도달하면 어김없이 닥쳤기 때문이다.

요즘엔 생물학적인 나이 말고도 ‘건강 나이’ ‘피부 나이’ 따위가 등장했고, 죽어서는 치아로 나이를 정확하게 추산해내며 다른 의미에서 중요하게 취급한다. 우선 교육에 대한 관심이다. 같은 해에 태어나도 출생 월이 빠르고 늦느냐에 따라 대학 진학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가 나와 있다. 김태훈은 ‘초등학교 취학 나이가 대학 진학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1, 2월 출생자가 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가정의학과 김철환 의사는 국내외 임상 자료를 토대로 10개 항목의 질문에 따른 답변 점수를 매겨 건강 나이를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해 화제가 됐다. 피부를 영상으로 촬영, 분석해 노화 정도를 측정하는 피부 나이 판단에 ‘거칠기’ 정도를 중요 근거로 꼽은 유제혁·석장미·황인준은 계산 방식을 논문으로 내놓았다. 다양한 연령대 실험자들로부터 얻어낸 피부 현미경 영상을 토대로 ‘피부 거칠기’를 정의하고, 그 정도를 추출해 낸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 통일’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엊그제 공언했다. 나이 계산의 혼선과 분쟁으로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 발생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었다. 사회복지서비스 등 각종 행정서비스를 받는 데 있어서 불편 개선을 가장 앞세웠으나, 실상 ‘나이’는 세금 납부, 병역 의무, 퇴직금, 보험금 등 경제생활과 일상적인 부담에 민감한 직결 사안이다. 어떤 영향과 파급으로 변동을 주게 될 지 정밀하게 따져본 구체적인 검토인지 걱정이 앞선다. 더구나 사법 행정 영역을 넘어 민간 등 사회적인 데까지 일시에 나아가겠다는 것은 자칫 기존의 인식 체계를 국가적 힘으로 밀어붙이는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박미현 논설실장 mihyunp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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