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양양주재 부국장

언제부턴가 “선거가 있는 짝수 해 강원도 동해안에서는 대형산불이 발생한다”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생겨났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1996년에는 고성 산불로 3762㏊ 산림이 잿더미가 됐고, 16개 마을에서 주택 227채가 불에 타 200여 명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던 1998년 봄에는 강릉시 사천면에서 불이 나 산림 350㏊를 태웠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2000년에는 고성, 삼척, 경북 울진까지 곳곳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2만 3400㏊의 산림이 초토화됐다.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2004년에는 속초 청대산과 강릉 옥계에서 산불이 발생해 각각 180㏊와 430㏊의 산림이 잿더미가 됐다.

한동안 잠잠하며 징크스를 벗어나는가 싶던 동해안 산불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됐던 2018년 다시 삼척에서 재발해 산림 117㏊가 소실됐다. 제20대 대통령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돼 있고 짝수 해까지 겹친 올해는 이러한 징크스와 맞물려 그 어느 해보다 산불에 대한 위기감이 컸다. 하지만 우려는 3월로 접어들면서 초대형 산불이 또다시 동해안 곳곳을 휩쓸며 현실이 됐다. 울진서 시작된 산불은 삼척으로 옮겨붙었고, 동해와 강릉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면서 상상하기 조차 힘들 정도의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태풍급 위력을 지닌 강풍을 타고 속수무책으로 불길이 확산되는 현상이 발생하자 언론에서는 한결같이 ‘양간지풍(襄杆之風)’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들 언론에서는 대부분 ‘양간지풍’을 ‘강원도 양양군과 고성군 간성읍 사이에서 부는 강한 바람’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해마다 봄이면 동해안 지역에는 백두대간을 넘어온 고온 건조한 바람이 부는데 이를 흔히들 ‘푄 현상’으로 알고 있다. 이 ‘푄 현상’을 두고 어떤 이는 ‘양간지풍’이 아니라 ‘양강지풍(襄江之風)’이 ‘바른 말’로 예로부터 바람이 세다고 일컬어지는 지역은 ‘간성’이 아니라 ‘강릉’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1633년 쓰인 이식의 ‘수성지’에는 ‘통고지설 양간지풍 일구지난설(通高之雪 襄杆之風 一口之難說)’이라는 말이 등장한다고 한다. “통천과 고성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양양과 간성에는 바람이 세게 부는데, 이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양간지풍’이든, ‘양강지풍’이든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지역 지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듯 하다.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은 조선시대에는 그 명칭이 ‘간성군’이었으며 행정구역은 금강산이 위치한 북고성에서 남고성 현내면에 이르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이후 ‘간성군’은 일제에 의해 명칭이 ‘고성군’으로 바뀌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과 북에 각각 두개의 ‘고성군’이 남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여기에 1963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속초읍이 속초시로 승격돼 분리되고, 양양군 관할이었던 토성면과 죽왕면은 고성군으로 환원됐다. 대신 1995년 강릉시와 통합되기 이전 행정구역명인 ‘명주군’ 관할이었던 현남면은 양양군으로 환원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양간지풍’에서 ‘간(杆)’은 북한의 고성군 지역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지금 흔히들 쓰고 있는 ‘양양군∼간성읍’의 의미가 아님이 분명하다. 이러한 역사적, 지역적 상황을 고려할 때 “한동안 ‘양간지풍’이라는 말 대신 백두대간을 낀 공통된 기후적 특징이나 발음상의 혼재성도 섞여 60년대 이후에는 ‘양강지풍’이란 말로 자연스레 대체됐다”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언어는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양간지풍’ 또는 ‘양강지풍’은 봄철 백두대간을 낀 남과 북, 동해안 일대에서 공통적으로 불어 닥치는 고온 건조한 일종의 계절풍으로, 불씨와 만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와 흔적을 남긴다. 아무리 큰 산불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그 시작은 개인의 사소한 부주의에서 비롯된다. 이번에 발생한 산불 가운데 일부는 방화로 인한 것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아무쪼록 사소한 부주의로 인한 산불이 더 이상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주의, 또 주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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