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 제자인 자공(子貢)은 장사에 능했다. 보통 장사꾼이 아닌 각국의 제후와 대등한 예(禮)를 나눌 정도의 사업가였다. 그런 자공을 유상(儒商)이라 불렀으니, 유상(儒商)은 상인의 자질에다 유학적 소양을 겸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추구한 경상(經商)의 길은 개인적 치부(致富)를 넘어서 천하와 백성을 이롭게하는 것이었다.

명·청(明·淸)시대 누백 년간 경제를 주도했던 양대 상단(商團)이 있었으니, 산서(山西)를 기반으로 한 진상(晋商)과 휘주에 근거를 둔 휘상(徽商)이 대표적이다.

교가대원(喬家大院)의 실존 인물 차오쯔융(喬致庸), 민국시대 금융재벌 쿵샹시(孔祥熙)는 진상의 후예이고, 홍정상인(紅頂商人) 후쉔앤(胡雪岩), 공산당 전 총서기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의 조적(祖籍)은 휘주다.

대륙에서는 유상(儒商)이 사라졌지만, 이땅에서는 LG와 GS가 진정한 유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47년 구인회 상회에 허만정의 3남 허준구가 참여하면서 그들의 동업이 시작되었다. 2004년 LG와 GS가 계열분리 할 때까지 3대 57년에 걸친 동반자 관계였다. 57년간 일체의 불협화음이 없었고, 헤어질 때도 또한 그랬다. 동행뿐 아니라 이별도 아름다웠다는 상찬(賞讚)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양가 모두 유학자인 조부의 유풍(儒風)이 살아있고, 누대에 걸친 겹혼사로 집안사람이란 생각도 작용했을 것이다.

진주시 지수면은 그들이 오래전부터 터잡고 살았던 곳이다. 고택이 남아있고, 도처에는 선영이 많을 수 밖에 없다. LG를 창업한 구인회에게 풍수적 영향을 준 선대와 구인회 6형제의 선영을 소개한다. 기존의 전통풍수가 아닌 필자의 맥로이론에 의거하여.

LG 창업자 구인회 집안은 본래 경기도 양주와 파주 등지에 세거했었다. 구인회의 8대조 구반(具槃)이 김해 허씨와 결혼하면서 진주 승산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구반(具槃)묘소. 능성구씨 진주 입향조. 지수면 압사리 소재.

전면에서 진입한 맥로가 11회절 명당을 맺었다. 묘소의 풍수파워는 후손들이 향촌에서 유지급 정도의 평판을 얻을 정도는 가능하다.

구정준(具鼎焌)과 구정현(具鼎炫) 묘소. 구반의 아들. 사봉면 마성리 소재.

능성구씨가 진주에서 단기간에 기반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은 두 분 묘소의 풍수파워 덕분이다. 모두 20회절이 넘는 대명당에 모셨다. 마블넷 방회장 선영이 21회절 명당이란 것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할머니조차 보지 못한 사람도 많지만, 예전에 조혼(早婚)을 하던 시절에는 증조까지 함께 사는 사세동당(四世同堂)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증조 묘소가 본인에게 미치는 풍수적 영향이 매우 컸었다. (훗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부모 묘소의 영향력이 가장 크지만).

LG 창업자 구인회에게 풍수적 영향을 주기 시작한, 그의 증조 묘소를 살펴본다.

구덕조(具德祖; 1828~ 1885년) 부부 묘소. 구인회 증조.

구인회의 7대조 구정준 묘소 근처에 모셨다.

증조 묘소의 후경.

동네 뒷산의 정상에 자리하여 풍광와 만두형세(산의 모양새)는 뛰어나지만, 기의 흐름인 맥로의 배(背)에 모셨다. 풍수적 도움을 줄 수 없는 자리다.

위성지도에 표시한 맥로도.

묘역 동북방에서 내려오는 붉은 선의 맥로가 구인회 7대조 묘역 뒤에서 분지(分枝)한다.

하나는 7대조 묘역으로 진입하여 대명당을 맺고, 하나는 아래로 내려간다.

그림과 같이 증조 묘소는 맥로의 면배(面背)의 배에 자리하니 흉지다.

구연호(具然鎬;1861~1940년)묘소. 구인회 조부. 지수면 청담리 소재.

비석에는 통훈대부 홍문관시독 만회(晩悔) 구연호지묘라 쓰여있다.

만회공은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를 지냈다. 구인회가 태어날 당시 3,4백석을 추수하는 비교적 유족한 편이었다. 만회공은 손자(구인회)가 태어나자 정득(丁得)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정미년에 얻은 옥동자란 뜻이다.

조부모 묘소 맥로도.

어떤 풍수가들은 이곳의 맥(로)는 후고산(後?山, 묘소의 뒷산)인 동북방의 방어산(防禦山)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맥로의 출발은 그렇게 가까운 곳이 아닌 100킬로 이상 떨어진 울산 방면이란 판단이다. 맥로의 회절수도 3기의 묘소 모두가 40회절을 넘는 천하대지에 자리한다. 또한 맥로의 일지맥이 맺은 대명당은 위의 표시와 같이 여전히 비어있다.

만회공은 생전에 구인회의 정신적 지주였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는 엄청난 풍수적 뒷심이 되어주었다. LG의 순조로운 출범은 이 묘소의 묫바람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구재서(具再書; 1887~1959년) 부부 묘소. 구인회 부모. 부산 온천동 소재.

부모 묘소를 고향인 진주가 아닌 이곳에 모신 것은 부친이 부산에서 별세하셨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두 분 묘소가 모두 소지소혈로 알았었는데, 2019년에 다시 확인해 보니 부친 묘소는 15회절 명당에 모셨고, 모친 묘소는 흉에 걸렸다.

구인회(具仁會; 1907~1969년) LG 창업회장 부부 묘소. 부모님 묘소 하단.

옆에서 진입하는 맥로가 위의 부모님 묘역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가니 이곳은 자리가 될 수 없는 흉지에 불과하다. 이 묘소가 장손자인 구본무의 불행을 초래했다는 풍수적 판단이다.

조선은 국시로 성리학(性理學)을 채택하고, 중농경상(重農輕商)의 정책을 추진한다. 조선번영의 장애요인이 되었다. 구인회가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그러나 정말로 탁월한 것은, 세상의 권력(힘)은 토지에서 생산과 유통으로 변하고 있음을 간파한 점이다. 1930년대, 전통 양반가에서 경상의 길로 나선다는 것은 파격적인 결단이었다.

2008년 1월, LG의 2대 회장 구자경의 부인 하(河)여사가 별세했다. 화장해서 봉안당에 모셨다는 기사가 떴다.

LG봉안당. 이천시 마장면 해월리 소재.

유교적 전통이 깊은 LG가의 종부(宗婦)를 화장(火葬)으로 모신다는 것이 의외였다. 그 때, 일부 풍수가들은 “LG의 풍수파워는 더 이상 볼게 없다”는 말을 했다.

필자는 봉안당을 간산하고 LG의 지속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 했다. 화장(火葬)으로 모셔도 발복한다고 오래 전부터 확신했기 때문이다.

2018년, LG의 3대 회장 구본무가 별세했다.

구본무는 생전에 장례는 화장(火葬)으로 조용하게 치루라는 유언을 남겼다. 고인의 유해는 화담(和談, 구본무 아호)숲에 수목장으로 모셨다고 한다.(곤지암 소재)

2019년, LG의 2대 회장 구자경이 별세했다. 해월리의 봉안당에 모셨을 것이다.
 

봉안당의 맥로도.

노란색 원 안의 건물이 LG의 봉안당이다. 2020년에 다시 간산해 보니 묘역의 경계펜스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맥로의 흐름은 외부에서도 판독이 가능하다.

봉안당 동북방인 양평방면에서 출발한 맥로가 직진으로 진행하여 LG인화원의 뒷산인 건지산팔부 능선에 이르러서는 인화원을 감싸고 돌면서 봉안당을 향해 낙맥한다. 아쉬운 점은 봉안당을 핵심정혈에서 2~3미터 지나쳐서 안치하였다. 30회절의 정혈은 놓쳤으나, 봉안당도 24회절 명당이니 LG가 국내의 선두그룹을 유지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LG 장자(長子)들의 선영을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LG 창업회장 구인회 형제들의 선영을 소개한다

구철회(具哲會; 1911~1975년) 부부 묘소. 남양주 화도읍 모란공원 내.

구인회의 첫째 동생으로 일찍이 당숙의 계자(系子)로 출계했다. 구인회를 보좌한 LG그룹 창업1세대였다.

묘소의 맥로도.

중앙의 묘소가 구철회 부부, 청룡방이 1995년 별세한 차남 묘소다.

구철회 묘소는 5회절, 차남 묘소는 3회절의 소지소혈이다. 구철회 묘소 전면에는 중견기업을 추동할 수 있는 14회절의 명당을 놓쳐버렸다.

1999년, LG 손해보험에서 계열분리한 것이 LIG보험의 모태가 되었다. 구자원(구철회 장남)

은 2006년에 건영을, 2009년에 한보건설을 인수하여 건설업으로 사세 확장을 도모했으나 좌초한다. 2012년에는 분식회계와 사기성 기업어음을 발행한 혐의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2020년 3월, LIG 회장 구자원이 별세했다.

구자원의 영욕에는 이곳에 있는 부모 묘소의 풍수파워가 정확하게 반영되었다는 생각이다.

구인회의 둘째부터 다섯째 동생은 오포읍의 광주공원묘원에 모셨다.

구정회(具貞會; 1918~1978년) 부부 묘소.

구태회의 둘째 동생으로 1947년 럭키사장, 1962년 금성사 사장, 1970년 금성전기 사장을 역임했다. 구정회 집안은 물류종합기업인 범한 판토스를 물려받았으나 2015년 5월에 LG상사의 종속회사로 편입되었다.

묘소는 구씨 묘역 상단에 자리한다. 묘소의 맥로는 뒷산에서 낙맥(落脈)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같이 뒷산을 감아 돌아서 구정회 묘소에 정확하게 대명당을 맺는다. 부부 묘소 뿐만 아니라 하단 중앙에 자리한 장남(具滋允,1994년)의 묘소도 상당한 역량의 혈처다.

LS는 재계서열 15위(2021년 기준), 연매출 23조의 기업집단이다. 전선, 전력설비, 금속, 에너지 등 기간산업에 기반을 둔 대표적인 B2B(기업과 기업간의 거래)기업이다. B2B사업 특성상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어도 재계에서는 상당히 주목받는 그룹이다.

2005년 LG에서 GS가 계열분리할 때, 구자경 회장은 창업공신인 삼촌들에게도 계열 분리를 실시한다. 구철회 집안에게는 LG화재(훗날 LIG), 구정회에게는 범한 판토스를 물려준다. 구태회,구평회,구두회 3 형제는 LS산전을 비롯 니꼬동제련, 가스회사인 E1 등을 인수한 것이 지금의 LS그룹이다. 경영권 분쟁은 형제간은 물론 부자지간에도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LS는 4촌간에도 깔끔한 경영권 이양의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구태회(具泰會; 1923~2016년)부부와 장남 구자홍(具滋洪; 1946~20226년)묘소.

대학을 졸업한 구태회는 잠시 큰형을 돕기는 했지만, 정치에 투신한다. 1958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6선 의원을 하는 동안 재경분야에서 활약했으며 국회 부의장까지 역임한다.

1980년, 군부에 의하여 정치규제를 당하자 정계를 떠나 LS그룹의 경영에 전념한다. LS의 최연장자로서 그룹의 중심축을 잡는 역할을 하였다.

구자홍은 2004~ 2012년까지 LS그룹 초대 회장을 맡으며 LS의 초석을 다졌다. 2013년, 사촌 동생인 구자열(구평회 아들)에게 그룹회장직을 넘겨주고, 2015년부터 LS 니꼬동제련 회장을 맡아왔다. 효성이 지극했고, 가족관계도 모범적이었다고 한다.

맥로의 주맥(主脈)은 상단의 구정회 묘소로 들어가고 방맥(傍脈)이 구태회 묘소로 진입한다.

구태회 묘소는 16회절, 배위인 최여사는 14회절 명당으로 후손들이 중견기업을 추동하기에 충분한 풍수파워이다. 백호방의 구자홍 납골묘는 길흉의 경계선 밖에 있으니 명당이 될 수 없는 곳이다.

구평회(具平會; 1926~2012년) 묘소.

구평회 또한 LG그룹의 창업공신이다. 호남정유와 럭키금성 사장을 역임했으며 무역협회 회장을 재임했다. 체육에도 공헌한 바가 적지 않으니 2002년 월드컵 유치원원장을 맡기도 했다.

구평회의 아들 구자열(具滋烈)도 2021년 3월부터 아버지처럼 무역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22년 1월, 구자열은 9년간 맡아왔던 LS 회장직을 4촌 동생에게 이양했다.

묘소는 14절 명당으로 중견기업의 총수 역할에 상당한 풍수적 뒷심이 되었을 것이다.

구두회(具斗會; 1928~2011년) 묘소.

LG 창업1세대의 막내인 구두회의 경력은 형인 구평회와 궤적이 겹치는 곳이 많다. 말년에는 도시가스회사인 예스코 명예회장을 맡았다.

2021년 1월부터 LS회장을 맡은 구자은(具滋殷)이 구두회의 장남이다.

묘소는 형인 구평회 묘소의 여기(餘氣)에 자리하는 8회절 명당이다. 중견기업을 추동하기에는 풍수파워가 아쉬운 곳이다.

구자학(具滋學; 1930~2022년) 묘소. 구인회의 3남. 구두회 묘소 하단.

얼마 전, 별세한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빈소에는 LG가는 물론 삼성가 사람들도 모습을 보였다. 구자학이 삼성 이병철 회장을 둘째 사위였기 때문이다. 구자학은 LG와 삼성이 사업상 경쟁을 할 때는 양쪽으로부터 눈칫밥을 먹기도 했다.

묘소는 명당의 범위를 벗어나 미미하지만 흉에 걸렸다. 묘소의 풍수적 영향이 자녀들의 경영권 분쟁에 어떻게 작용할지 조심스러운 시각이다

구본무 회장은 생전에 건전하고 깨끗한 정도(正道)경영을 추구했다. LG와 LS그룹의 구(具)씨 자제들은 육군병장 만기 전역자들이다. 또한 정경유착을 우려하여 정계인사와는 혼사도 맺지 않았다고 한다. LG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때문이다. LG가에는 여전히 만회(晩悔)공의 유풍(儒風)이 살아있다는 생각이다.

LG는 50여년간 재계순위 5위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러나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의 격랑에서LG가 세계 초우량 기업으로 우뚝 설려면 풍수적 진단도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적 초우량기업으로 추동할 천하대지의 명당이 도처에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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