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1월 8일,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는 대통령선거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민족적 과업을 위해 젊은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뒤이어 김대중과 외부에서 영입된 이철승 등이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 출마, ‘40대 기수론’은 대세로 자리를 굳혔다. 이듬해 9월 29일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오후에 치러진 2차 투표에서 김대중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비록 1971년 선거에서 정권 교체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들의 도전정신과 패기는 국민들의 애정과 관심을 차지했다.

훗날 차례로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과 김대중은 젊은 정치인의 표상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6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60년 36세 나이로 1961년 인제군 민의원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발을 디뎠다. 이들 2명의 정치인은 갖은 고초를 겪으며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더불어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거물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8회 지방선거를 통해 강원도의회와 기초의회에는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39세 이하 젊은 정치인을 뜻하는 ‘젊치인’ 16명이 당선됐다. 4년 전인 지난 7회 지방선거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은 모두 광역 및 기초의원 선거 출마자다. 비례대표를 포함해 광역의원이 5명, 기초의원이 11명으로 집계됐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이 6명, 국민의힘이 10명으로 국민의힘 비중이 높았다. 성별로는 여성이 5명, 남성이 11명이다.

내달 등원하는 이들 20~30대 정치인에 대한 도민들의 기대는 크다. 그동안 신선한 정치에 대한 갈증이 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며 지역 정가에 참신한 기운을 불어넣기를 바란다. 행여 정치적 계산에만 치우쳐 노회한 정치인 흉내를 낸다면 유권자의 실망은 더욱 커질 것이다.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자신만의 색깔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선량으로 활약할 것으로 믿는다.

이수영 논설위원 sooyou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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