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단골들이 지켜준 떡집, 단골 기념일 지키는 떡집
광원 생활 중 사고로 장애 입어
사촌 떡집서 5년간 기술 수련
1993년 ‘서울떡집’ 넘겨 받아
코로나 사태 전 직원 5명 근무
해썹 인증 의무화로 판로 난항
도매 중단 소매업 형태 변화
두 내외만 떡 만들어 판매 중
감자·고구마떡 SNS로 유명세
매출 도움 안돼도 손님 위해 빚어
“30년간 한자리 쉬지 않고 영업
주민·단골고객들이 찾아준 덕분
닫힌 문 볼일 없도록 운영할 것”

한국인은 떡과 함께 태어나 떡과 함께 죽는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떡은 한국인의 통과의례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개인·가족차원의 작은 행사에서부터 마을대동회와 지자체 축제 등 공적 행사까지 기념할만한 모든 의례는 떡을 맞추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때문에 아무리 작은 시골 장터라도 최소한 한 개 이상의 떡집은 존재한다. 태백 황지자유시장에도 7개의 떡집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떡집(대표 김건희)은 시장 초창기부터 자리잡아 50년 이상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난 1993년 친척으로부터 떡집을 인수한 김 대표의 30년을 포함, 50년 이상을 지금 가게터에서 같은 이름으로 운영해왔다. 김건희(58) 대표가 처음 떡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것은 개인적 불행 때문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이 점지해준 선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단다.

▲ 서울떡집 김건희 대표가 가게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서울떡집 김건희 대표가 가게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삼척에서 태어난 김건희씨는 지난 1982년 한보탄광이 개광할 때 18살의 어린 나이에 광원으로 취직돼 태백으로 왔다. 하지만 광원 생활 3년 만에 사고를 당해 제대로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일자리를 잃었다. 그때의 사고로 지금도 다리를 절을 정도의 장애를 입었다. 사고 수습을 도와주는 줄 알았던 사람이 자신에게 왔어야 할 보상금을 몰래 수령한 사실을 뒤늦게야 알 정도로 세상일에 어수룩한 나이였다. 막막한 상황에 처한 김 씨를 당시 서울떡집을 운영하던 이종사촌인 민경철씨가 앞으로 먹고 살려면 기술이라도 배우라며 직원으로 채용해줬다. 이종사촌 밑에서 5년 정도 떡 만드는 기술을 익힌 김 씨는 충주에서 떡집을 운영하던 매형한테 가서 일을 하던 중 1993년 이종사촌으로부터 서울떡집을 넘겨받았다.

서울떡집 김건희 대표가 떡을 만들 쌀을 불리고 쌀가루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떡집 김건희 대표가 떡을 만들 쌀을 불리고 쌀가루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 대표가 스스로 “선물 같다”고 말하는 떡 만드는 일은 쌀을 불리고 빻아 가루를 만들고 떡 종류에 따른 개별성형까지 해야할 공정이 너무 많아 매일 아침 5시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해야하는 힘든 노동이다. 주문량에 따라 매일 해야할 일의 양도 수시로 바뀌고 코로나 19와 지역인구의 감소로 생산하는 떡의 양은 대폭 줄었지만 새벽에 출근하는 일은 변하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지난 2019년 이전만해도 직원 3명과 김 대표 내외 등 5명이 일할 정도로 주문량이 많았지만 지금은 두 내외만으로도 어려움 없이 가게를 꾸릴 수 있을 정도로 일거리가 줄었다. 가게 운영방식도 예전에는 주문을 받아 대량 납품하는 도매업 형태였다면 지금은 가게를 찾은 손님에게 떡을 파는 소매업 형태로 변했다. 김 대표는 떡을 만들고 부인은 가게에서 떡을 판매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떡집에서 생산하는 떡은 20여 종류로 주문에 따라 생산량은 매일 조금씩 다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인근지역에서 가장 큰 기업인 강원랜드에 떡을 대량 납품했지만 지난해 8월부터 해썹(HACCP) 인증 의무가 소상공인에게까지 엄격 적용되면서 납품기준을 맞출 수 없어 판로가 끊겼다. 강원랜드 등 큰 고객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서울떡집도 기존의 벽면을 스테인리스로 전면 교체하는 등 최대한 깨끗한 환경에서 떡을 생산하고 있지만 강화된 해썹(HACCP)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5억원 정도의 추가 시설투자가 필요하다. 떡가게의 영업이익은 기껏해야 총매출의 15% 수준이기 때문에 단독으로 그만큼의 투자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떡집 김건희 대표가 떡을 만들 쌀을 불리고 쌀가루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떡집 김건희 대표가 떡을 만들 쌀을 불리고 쌀가루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다른 상인들과 시설 개선을 위한 합동 투자 방안을 논의해봤지만 그정도의 여력을 갖춘 가게가 없고 외부투자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강원랜드와 태백농협 매장 등 큰 고객이 끊긴 것은 아쉽지만 소매와 단골손님의 주문 만으로도 두 내외가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벌이는 돼 마음을 접었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김 대표는 이어 “대한민국에서 먹거리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정말 나쁜 심성을 가진 사람이 아닌 한 최대한 깨끗하고 청결한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한번도 제대로 현장을 방문해보지 않은 정책 입안자들이 ‘국민 건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소상공인의 목줄을 죄는 형태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소연한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김 대표의 또 다른 애로사항은 대다수의 거래가 카드결제로 이뤄지는 것. 예전 현금을 받을 때와 비교하면 같은 양을 팔아도 수익률이 크게 떨어진다.

서울떡집은 주문에 따라 다양한 모양의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서울떡집은 주문에 따라 다양한 모양의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김건희 대표는 지역에서 나눔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가게를 운영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매년 추석과 설 등 명절에는 태백시를 통해 지역 저소득층에 나눠줄 떡을 기부하고 있다. 또한 지역 사회복지센터에 매달 5만원씩 성금도 기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장내 상가와 공생하기 위해 경북 예천에서 들여오는 쌀을 제외한 모든 재료는 시장 내에서 수급하고 있다.

서울떡집은 일부 손님들이 SNS를 통해 ‘태백을 대표하는 예쁘고 맛있는 떡’이라며 김 대표가 만든 ‘감자·고구마 떡’을 홍보하는 바람에 지금은 일부러 떡을 사러 먼 곳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생겼다. 감자·고구마 떡은 이 가게의 주력품목이 아니어서 주문보다는 소매로 판매한다. 평일에는 5~6상자(10개들이), 주말·휴일에는 10~20상자가 팔린다.

서울떡집에서 생산한 고구마떡은 모양이 이쁘고 맛이 좋아 타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인기이다. 
서울떡집에서 생산한 고구마떡은 모양이 이쁘고 맛이 좋아 타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인기이다. 

김 대표는 “(감자·고구마 떡은) 실질적으로 가게 매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만들고 있다”며 “다른 지역에서 만드는 떡은 원재료보다 앙금을 많이 넣어 만들지만 저는 원재료를 90%까지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맛과 품질면에서는 전국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서울떡집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김건희 대표는 “한 자리에서 30년을 쉬지 않고 영업할 수 있었던 것은 태백주민과 단골고객들이 꾸준히 가게를 찾아준 덕분”이라며 “일할 수 있는 한 손님들이 닫힌 문을 보고 돌아가지 않도록 가게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00년 가게가 되기를 바란다”는 기자의 덕담에 김 대표는 “태백시의 인구가 너무 급격하게 줄고 있어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가게문을 닫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며 혼잣말처럼 말한다.

안의호 eunsol@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