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가을 프랑스로 가서 IMF 구제금융 시기에 귀국했다. 젊어서 아름다운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꼭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은 않다. 당시만 해도 유학생들 대부분이 겪었을 가난과 차별의 경험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 몇천 달러에 불과하던 1990년대만 하더라도 서양인들에게 한국은 아시아의 작은나라에 불과했다. 당나라 때부터 세계와 교역하던 동방 문명의 발상지 중국이나, 근대문명의 우등생 일본이 일찍 유럽에 알려진 것과 달리, 한국은 그 둘 사이 어디쯤 있는 존재감 약한 나라였다. 그러니 외국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설명을 늘 해야만 했고, 그때마다 꼬집어 말하기 애매한 불편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그 뒤 사반세기가 흘렀다. 그 사이 예닐곱 번 유럽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매번 놀라는 일인데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다. 물론 우리는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 국민소득 일만 달러의 시대를 지나 삼만 달러를 넘어서며 선진국의 문턱에 이르렀다. 구매력 지수로만 보면,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 세계사에서 식민지배를 당했던 나라가 식민통치를 한 제국주의 국가를 앞선 사례는 딱 세번뿐이다. 미국이 영국을, 아일랜드가 영국을, 그리고 대한민국이 일본을 앞선 일이 그것이다. 자랑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인류의 골칫거리 노스 코리아를 더 많이 알던 유럽인들이 이제는 먼저 사우스 코리아 사람인지 묻는다. 잘 알려진 대로 소니를 제친 삼성과 LG 전자제품에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현대기아자동차에 놀라운 눈길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조상 잘 둔 덕에 유럽인들은 꽤 부유하게 산다. 돈 좀 벌었다고 특별히 존중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경제규모로 우리는 아직 중국과 일본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한국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우리가 개성적인 문화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부커상 수상을 비롯해 읽히기 시작한 한국 문학, 아카데미와 칸 영화제 등에서 거듭 트로피를 움켜쥐는 한국 영화, 빌보드 차트 1위를 찍는 BTS를 비롯한 한국 대중음악, 조성진과 임윤찬처럼 클래식 음악계를 놀라게 하는 한국 연주자들 등등 작은나라 한국은 서양인들에게 새로운 문화의 보고가 되고 있다. 20세기 후반 일본 음식을 먹는 일이 서양인들의 세련미를 보여주는 일이었다면 21세기엔 한국 음식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체 그 길지 않은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무엇보다 개방에서 그 힘을 찾고 싶다. 내가 귀국하던 IMF 구제금융 시대는 암울했다. 날개 꺾인 새처럼 비루한 풍경이 곳곳에 펼쳐졌다. 하지만 우리는 주저앉지 않고 타의에 의해 강요된 문호 개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더 강한 외부 세계와 경쟁하면서 인류 보편의 기준을 배우며 우리 자신을 성숙하게 만드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준전시 분단국가란 한계를 자유와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내면화하며 세계시민이 되는 계기로 만들었다. 불과 20여년 전의 일본문화 개방이 그 상징적 사건이다. 대대적 반대로 시끄러웠지만 우리는 열었고 공정하게 경쟁해서 그들과 다른 우리의 문화 한류를 만들어냈다. 그 에너지가 지금 서양인들로 하여금 한국문화를 다시 보게 만들고 있으며, 경제적 부흥과 더불어 한국의 위상을 바꾸었다.

오천만의 작은 시장, 분단국이라는 위험, 없는 자원 등등 우리를 가로막을 장애는 차고 널렸다. 하지만 개방과 경쟁을 통해 우리는 세계와 연결되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증명하며, 뛰어난 인적자원에 힘입어 지금의 성취를 거두었다. 그러니 나와 같음에 매달리지 않고, 오히려 다름에 문을 열어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일, 그것이야말로 작은나라 대한민국이 경제강국, 문화선진국이 되는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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