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는 깊은 잠에서 빠져있다.

급격히 변화한 장묘문화와 변화에 능동적 대응을 못한 풍수이론과 풍수계의 상황이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2020년 서울의 화장률이 92%를 넘어섰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납골당이나 공원묘원에 모시는 것이 보편화 되었다. 일렬로 배치된 공원묘원 안의 수 많은 묘소 중, 어느 곳이 명당이고 어느 곳이 흉지일까. 공원묘원에서 명당을 찾아내지 못하면, 풍수는 존립하기 어렵게 되었다.

필자는 당대 최고의 풍수가인 수강(秀崗) 문하에서 15년 이상을 보냈다. 산세의 모양으로 길흉을 판단하는 만두(巒頭,형세론)와 방위와 시간을 길(吉)한 쪽으로 정하는 이기론(理氣論)과 택일(擇日)까지 배웠다. 또한 한문의 원전(原典) 독해도 가능해야 했다. 많은 내용을 반복해서 익혔지만 현장에 들어서면 산은 산이고 책은 책(山者山,書者書)일 뿐이었다.

하물며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묘원에는, 전통풍수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용(龍, 풍수에서는 혈처를 품은 산을 용이라 한다)의 머리나 허리는 끊어졌고, 혈(穴)의 증거인 혈증(穴證)은 중장

비에 의해서 사라졌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화장(火葬)해도 발복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화장해서 모셔도 그 모시는 장소(지점)에 따라,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매장과 동일하게 후손에게 풍수적 영향을 주는 것을 확인했다. 풍수책 어디에도 없는 주장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풍수이론은 복잡다단하게 분화와 첨가를 거듭했지만, 그 실제적 효과는 확인된 바 없다. 불교의 핵심이 선(禪)에 있듯이 풍수도 그 근본인 기(氣)의 문제를 천착해야 한다.

필자는 기(氣)를 중심으로 하는 맥로이론을 주창하였다. 기의 흐름과 멈춤을 인지하고, 그에 따른 길흉경계를 구분하고 혈처(穴處)의 풍수파워를 계량화하는 것이 그 요체다.

이는 국내나 국외, 대도시나 향촌, 산간이나 평야, 공원묘원이나 납골당에서도 명당과 흉지를 판단할 수 있고 또한 혈처의 풍수파워를 측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예컨대, BTS의 방시혁 조부모 묘소의 풍수파워는 중국의 전 총서기 후진타오(胡錦濤)부모 묘소와 대등하다는 것, 중견기업을 견인할려면 몇 회절 이상의 풍수파워가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다 라는 것들을 말할 수 있다.

군신봉조의 혈처에 조상을 모시면 그 후손 중에 군주가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이런 감언을 믿었다가 낭패를 당한 사례를 목격하였다. 역대 대통령 선영 중에 군신봉조나 상제봉조 등의 혈처에 선대를 모신 분은 한 분도 없다. 심지어 시진핑(習近平)이나 아베신조(安倍晋三)부친 묘는 화장하여 납골로 모셨다.

맥로이론에 의한 공원묘원의 납골묘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예능프로에 출연하여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를 자랑하는 여에스더. 그의 건강기능식품 쇼핑몰은 연매출 1,000억대를 올렸다고 한다. 그의 조부는 대구의 경제계 거물로 대구일보 사주였다. 1971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대구 유세를 하는데, 그의 선거 유인물은 어디에서도 인쇄할 수 없었다. 반골기질의 여에스더의 부친이 밤새 윤전기를 돌려 유인물을 인쇄했다. 집안에는 풍파가 밀려왔고, 부친은 국외 추방을 당했다.

원래 여씨들의 선영은 성주군 벽진면에 있었다.

여에스더 가족묘. 광주시 오포읍 소재.

묘표(墓表)에는 성산여씨(星山呂氏) 수촌백파(樹村伯派) 가족묘라고 쓰여있다.

가족묘에는 증조부모, 조부모, 부친과 동생 모두 6위를 모셨다. 명당에 여러 분을 함께 모시면 풍수파워가 배가(倍加)된다. 필자가 현장에서 체득한 현상이다. 일본의 유명 기업인, 정치 인 가문에서 이렇게 모신 사례를 많이 목격했다.

묘소의 맥로도.

묘소의 맥로는 묘역의 뒷 산인 문형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동북방의 광주(경기) 방면에서 출발한 것이다. 17회절 명당이니, 중견기업의 추동이 가능한 역량이다. 여에스더몰의 2022년 매출 목표 2,000억원 달성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맥로이론에서는 핵심 혈처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고, 또한 명당의 범위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시 한다. 청색으로 표시한 길흉경계선 아래 쪽이라야 명당(자리)이 될 수 있다.

1997.01 성광제약(주)로 법인 전환

1995.03 KGMP 적격업체 승인

1988.01 김용안 대표이사 취임

1988.01 ‘성광제약 공업사’로 사명 변경 및 김용안 대표이사 취임

1957.05 의약품 제조업 및 판매업 허가, 성광약화학 연구소 설립

가정마다 하나씩은 구비하고 있는 소독약, 일명 ‘빨간약’으로 이름을 알린 중소제약사 퍼슨(Firson). 중소기업의 절반은 서울과 수도권에 있지만 퍼슨의 본사는 천안시 백석공단 안에 있다. 창립한지는 60년이 됐고, 1991년에 성광제약으로 법인전환을 하였다. 2005년, 창업자인 김용안 대표가 별세하고 그 후 2세인 김동진이 대표를 맡고 있으며, 2015년 12월, ㈜ 퍼슨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경주김씨 상촌공파(桑村公派) 가족 묘원.

김용안 대표 이외에 또 어느 분을 모셨는지는 모르겠다.

이 묘소는 여에스더 선영과 동일블럭 동일 열(列)에 자리한다. 여문(呂門)의 선영과 10여 미터 가량 떨어져 있으나 여문은 핵심 혈처에, 퍼슨은 그 여기(餘氣)에 자리하는 11회절 명당이다. 두 회사의 성장과 매출을 비교해보면, 풍수파워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강소기업 퍼슨이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선영풍수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광주 오포를 지나다 퍼슨이 눈에 들어왔다. 퍼슨의 광주물류센터라는 직원의 말이다.

왕회장은 1954년에 회사를 설립하여 한국 수산물 가공업의 태동기를 이끌었다. 1970년에는 지금의 회사를 만들어 원양어업과 식품가공, 수산물유통 등 수산 분야에 매진해왔다. 2008년에는 40년간을 맡아왔던 대표직을 물러났다. 원양어선 18척, 국내 자회사 3개, 해외투자법인 4개, 식품가공, 냉동창공 등을 보유하고 있다.

창업자는 2013년에 별세했다. 2014년에 첫 간산을 했는데 최근에 확인해 보니 2020년에 아들 한 분도 별세했다.

원양수산 창업자 왕회장 납골묘소.

이곳은 여에스더 선영에서 백호방으로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맥로의 흐름은 그림과 같이 위로 계속 진행하니 묘소는 맥로의 면배의 배(背)에 해당하는 곳이다. 2세들이

경영을 하는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오래 전에 전남 고흥에서 박상천 장관의 선대 묘소들을 간산한 적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이곳에서 박장관 본인의 묘소를 발견했다.

박상천은 1988년 정계에 입문한 이후 고흥과 보성에서 5선의원을 기록했고, DJ정부에서는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서울법대와 사법고시 동기인 민자당의 박희태와는 절친이자, 각기 여·야의 대변인으로 명성을 날렸다. 지독한 애연가였던 그는 회의 도중에도 담배를 피기 위하여 수시로 들락거렸다. 참다 못한 DJ가 “당신은 여기서 피워도 됩니다”. 어전회의에서 흡연을 윤허받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박상천(1938~2015년) 전 법무장관 가족묘소.

묘소의 뒷면은 인위적으로 절개했고, 모양도 유정(有情)하게 안아주는 모습이 아니다. 즉, 용은 파괴되었고, 개면하지 않아(不開面) 혈이 될수 없는 곳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박상천 가족묘(노란색 원)는 핵심 주혈의 바로 아래에 자리한 10회절의 명당이다.

맥로이론의 간법(看法)은 이와 같이 전통풍수와 다르다.

맥로이론의 간단 설명

 

 

 

풍수파워는 핵심 주혈인 1번이 가장 좋다. 그리고 2번이 다음으로 좋다.

3과 4는 주혈 좌우에 가까이 있지만 맥로가 전면을 향하여 뻗는 기운이 미치는 5,6번이 3,4번 보다 풍수파워가 좋은 경우가 많다.

송삼석 회장은 1960년 광신화학 공업사를 창업하여 크레파스와 물감을 제작·판매했다. 1962년, 일본의 우치다 요코(uchida yoko) 직원이 펜을 사용하는 것에 착안하여 1963년부터 국내 최초로 잉크가 담긴 “모나미 153”볼펜을 만들기 시작했다. 출시 초반에는 판매가 저조했으나, 제품을 거듭 보완하고 발품의 홍보 덕분에 판매가 급증했다. 1974년에는 회사명을 아예 “모나미”로 바꿨다. 이후 매직,플러스펜,네임펜 등 다양한 필기구 개발을 주도하면서 문구산업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송삼석은 70세가 되던 1997년에 경영권을 장남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모나미 창업자 송삼석(1928~2022.4월)과 배우자(1934~2020.9월) 묘소. 양평 사설묘원 소재.

송회장의 고향은 완주인데, 박상천과 같이 자신의 귀숙처를 서울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맥로도. 전면은 십여 년전에 별세한 따님 묘소.

송회장의 묘소는 11회절, 부인은 9회절 명당이다. 청색의 길흉경계선이 청룡방으로 펼쳐졌으 면 앞에 있는 묘소도 그 여기(餘氣)로 자리가 된다. 그러나 하단에서 올라오는 별도의 맥로 가 길흉경계선을 확장을 가로 막았다.

 

 

 

 

 

 

 

 

 

김동길 교수 부모(청룡방)와 매제(백호방) 묘소. 위와 같은 장소.

부친 김병두(1894~ 1969년), 모친 방신근 (1904~ 1973년).

김병두는 평남 맹산의 원남면장일 때 결혼을 한다. 면장을 그만두고 가산을 기울여 광산업(鑛産業)에 투신했지만 노다지의 꿈은 산산조각났다. 이때부터 식구들 생계는 아내의 어깨에 지워졌다. 부잣집 바느질, 빨래, 양말꿰매기 등 궂은 일을 가리지 않았다.

평양에서 셋방살이 10여 년에 열네 번의 이사를 해야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공부는 시켜야 한다”는 방신근의 집념이자 신념은 굳건했다. 김옥길·김동길 남매를 키워낸 입지전적인 어머니였다.

 

 

 

 

 

맥로도.

두 묘소의 풍수파워는 동일한 11회절 명당이다. 노란원으로 표시한 곳이 12회절의 주혈이 다. 김교수의 부모님은 처음에는 시흥에 모셨으나 개발로 인해 이곳으로 이장했다.

@ 예전에는 4세동당(四世同堂)은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선영이라도 4세·5세 동당의 가족묘원을 조성하면 편리성과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명당의 한 장소(지점)에 많은 분을 안치하면 풍수파워가 상승

작용을 하여 후손들이 대대손손 잘 될 것이란 생각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방수와 통풍에 효과적인 소재발굴과 기술개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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