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넘게 이어온 정직·신뢰…간판 필요없는 ‘믿고 찾는 가게’
봉평 전통시장 골목길 위치
2008년 부친께 가게 물려받아
고품질 잡곡 구매 등 원칙 전수
평창군 1호 백년가게 선정
아내 손글씨로 쓴 상품명 눈길
봉평 특산물 메밀·조청 인기
손님 80% 단골, 택배 50% 육박
“꾸준히 오랫동안 가게 지킬 것”

▲ 상품 포장 중인 김형래 대표
▲ 상품 포장 중인 김형래 대표

백년이 훨씬 넘은 가게는 지금도 옛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대흥쌀상회’. 상호 간판은 가게 앞에 설치한 빗물받이 플라스틱 차양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지만 단골 손님들이 여전히 많이 찾아온다.

평창군 봉평면 봉평전통시장 골목길에 위치한 대흥쌀상회의 첫 인상은 ‘오래된 역사가 현재를 거쳐 미래로 달린다’는 것이었다.

현재 주인인 김형래(53)씨의 부친 김남준(85)씨가 지난 1965년 가게를 개업했지만, 부친 김 씨도 친척에게 가게를 물려받아 처음 문을 연 때는 일제시대 이전일 것으로 추정돼 100년은 족히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친이 운영하던 가게를 현재 주인 김형래 대표가 이어받은 것은 지난 2008년으로 부친이 43년 운영했고 아들이 15년째 운영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경기도 안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작은 김밥집을 열어 돈도 벌었지만 부친이 연세가 들며 고향으로 돌아와 가게를 물려받아 대를 이어 가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 평창 대흥 쌀 상회의 간판
▲ 평창 대흥 쌀 상회의 간판

지금은 부친이 가게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지만 초기에는 지역에 잡곡 농사를 잘 짓는 주민을 알려줘 고품질의 잡곡을 구매해 판매하는 등 진실성을 갖고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며 고객과 신뢰를 쌓는 상거래의 원칙을 전수해준 부친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늘 간직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평창군 1호 백년가게’답게 대흥쌀상회는 오랜 흔적과 손길이 남아있다.

대흥쌀상회는 처음에 쌀을 파는 상점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봉평지역의 특산품인 메밀을 비롯한 다양한 잡곡과 건나물 등을 판매하며 작은 규모에도 80여가지의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6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는 요즘 상점들에 흔한 상품 보관 냉장고와 쇼케이스 등은 찾아 볼 수 없다. 냉장보관이 필요없는 잡곡과 건나물 등이 주 품목이기 때문이다.

▲ 평창 대흥 쌀 상회 인기상품인 ‘옛날 조청’
▲ 평창 대흥 쌀 상회 인기상품인 ‘옛날 조청’

대신 소박하고 다소 투박한 나무상자 진열장에 다양한 상품을 진열하고 각 상품에는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부인이 직접 쓴 예쁜 손글씨로 상품명을 적어 안내해 상품의 가치를 높이고 정감가게 만들었다.

작은 가게지만 500∼700g으로 소포장한 메밀쌀과 통 메밀, 찹쌀, 멥쌀, 좁쌀, 보리, 율무, 찰보리, 귀리, 콩, 팥 등 다양한 곡물과 메밀차, 메밀가루, 메밀국수 등 식재료들이 가득 차 있다. 볶은 메밀 등 1차 가공한 곡물도 있고 10㎏, 20㎏의 포대 쌀도 판매한다.

또 봉평지역에서 나는 자연산 취나물과 곤드레, 다래순 등을 직접 채취하기도 하고 주민들이 채취해 온 것을 구매, 직접 데치고 건조시켜 200g 단위로 소포장한 건나물도 판매해 핵가족들이 구입, 식성에 맞게 요리해 먹는데 적합하도록 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가게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대부분 지역에서 나는 국산이지만 몽골산 타타리메밀은 유일한 외국산으로, 소비자들이 국산 메밀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주인의 아이디어다.

▲ 평창 대흥 쌀 상회에 진열된 상품.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아내가 직접 손글씨로 상품 설명을 적었다.
▲ 평창 대흥 쌀 상회에 진열된 상품.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아내가 직접 손글씨로 상품 설명을 적었다.

제품 가운데 인기있는 것은 봉평 특산물인 메밀제품과 쌀 등으로 특히 옛날조청은 전통 조청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어 소비자들의 재구매율이 높다고한다.

김 대표는 바쁜 가게 운영중에도 직접 3000여평의 밭에 감자와 찰옥수수 농사를 지어 수확기가 되면 단골 고객들의 예약과 SNS홍보를 통해 판매, 믿고 사 먹을 수 있는 농산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이 가게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고객들의 신뢰가 쌓여 손님의 80% 정도가 단골 고객이고, 택배 판매가 50%에 육박하고 있다.

김 대표는 가게를 운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3년전쯤 북한 말씨를 쓰는 여성이 전화를 해 와 조선족인줄 알았으나 탈북 여성이었다”며 “이 여성이 가게에서 파는 옛날조청을 먹고 북한에 있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 준 맛과 똑같아 고향 생각이 난다며 여러병을 택배로 주문해 장사하는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 평창 대흥 쌀 상회 김형래 대표. 신현태
▲ 평창 대흥 쌀 상회 김형래 대표. 신현태

현재 봉평면 창동2리 이장과 봉평전통시장상인회장도 맡아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김 대표는 “전통시장의 작은 가게지만 그동안 쌓은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많은 단골손님들이 찾아줘 큰 어려움이 없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꾸준히 좋은 상품으로 고객과의 약속을 정직하게 지키며 열심히 일하고, 가게를 잘 운영해 주민과 공생하고 지역에 봉사하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100년 가게로 아들에게 물려 줄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대표는 “아직 아들이 어리고 자신도 젊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아들이 나이가 들어 가게를 이어받겠다고 하면 물려 줄 생각도 있다”고 답했다.

문화관광형 특성화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된 봉평전통시장은 매달 끝자리가 2, 7인 날에 운영하는 5일장 외에 이달부터 오는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주말장’을 운영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주말장이 운영되면 외지 관광객 증가로 더 바빠지고 시장 활성화도 기대된다”며 “좋은 상품을 고객들에게 판매하고 정직과 신뢰를 지키며 꾸준히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해 나가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신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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