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동해안 고유의 자연자원인 석호(潟湖)를 말할 때 가장 안타까운 호수가 있다. 강릉시 강동면 시동리 ‘풍호(楓湖)’이다. 단풍이 고운 호수라고 해서 이름 지어진 곳이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지금은 호수가 사라지고, 그리움을 달래는 이름만 전하기 때문이다. 강릉지역 향토사료인 ‘임영지’ 등에 따르면 풍호는 둘레가 5∼6리에 달했다. 적어도 40∼50년 전에는 그러했다. 그러나 1972년에 주변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서고, 석탄재 처리장으로 사용되면서 호수는 매립됐고, 지금은 그 위를 골프장이 차지했다.

강릉부 남쪽에 있어 남호(南湖)로 불리기도 한 풍호의 온전한 정취를 더듬으려면 옛 기록을 들춰야 하는데, 1605년에 강릉대도호부사로 부임한 정경세(鄭經世)는 “송림과 모래밭을 지나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문득 드넓은 물결이 끝없이 펼쳐진 것이 하늘빛으로 잇닿아 있어 별천지 마냥 놀라울 뿐이니 명승이 분명하다”고 했다. ‘관동읍지’는 ‘크기가 비록 경포호만은 못하지만, 호수 가운데에 연꽃이 만발하니 이것은 곧 경포호에는 없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읍지의 기록 그대로 단풍과 함께 가시연꽃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풍호애련(楓湖愛蓮)’이 이곳 팔경의 으뜸으로 칭해졌다.

그 풍호의 주인공 연꽃이 되살아나고 있다. 드넓은 호수는 사라졌지만, 연꽃은 풍호와 잇닿아 연결된 또 다른 습지인 ‘뒷개’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지극 정성에 힘입어 해마다 여름 제철에 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다시 유명해졌다. 올해도 7월 29∼31일까지 ‘연이랑 풍호마을 연꽃축제’가 코로나 시름을 딛고 다시 마당을 펼친다. 산업화 개발 미명 아래 희생된 풍호의 추억을 되살리려는 주민들의 노력이 애련하고, 아름답다.

풍호는 경호(경포호), 향호, 순개, 뒷개와 함께 강릉이 자랑하는 5호(湖)로 통했다. 동해안 전체로 따지면 석호는 열여덟 곳, 무려 18호에 이른다. 당장의 편리만을 좇는 무분별한 개발 논리가 맹수처럼 자연계를 집어삼키는 일그러진 문명의 그늘에서 풍호의 추억이 전하는 경계 메시지가 각별하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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