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는 많은 분이 불안하다며 찾아오십니다. 불안에 원인이 있는 경우는 그나마 낫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나 원인에 비해 과도한 불안이 지속되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고 두근거림, 호흡 곤란, 두통, 어지러움, 식은땀, 손발의 감각 이상이나 비현실감, 불면 등의 증상들이 동반된다면 적극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많은 분을 상담하다 보면 중요한 인생의 기로에서 불안으로 인해 어떤 선택을 하고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분들을 보게 됩니다.

A군은 대학을 졸업하고 평소 꿈꿔왔던 회사들에 취업하고자 노력하였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주변을 보면 나보다 스펙이 좋지 않은 친구들도 유명한 기업에 턱턱 합격하는데 계속 낙방을 반복하다 보니 기업들의 선발 과정이 공정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몇번의 좌절 끝에 결국 부모님과 주변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몇가지 과목은 대학 때 전공과도 관련이 있어 보였고, 공정하게 시험으로 선발하는 데다가 오래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1∼2년 공부하고 합격하여 이미 공직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열심히 준비한다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유로울 것 같았던 시험 일정은 금방금방 다가왔고, A군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공부할 과목과 분량은 생각보다 많았고, 응시자도 많아 당락이 아주 작은 점수 차이로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더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강박적인 생각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세세한 내용까지 집착하게 되었고, 갈수록 공부 능률은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시험을 며칠 앞두고 A군은 이번 시험은 합격하기 힘들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고, 한 해 더 완벽하게 준비해서 합격하더라도 늦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응시를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B씨는 코로나 시국에 주식 투자로 큰 이익을 본 친구를 보고 주식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안전하게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에 주식 관련 영상들과 경제 서적, 신문들도 탐독했습니다. 연습 삼아 소액으로 투자한 종목들에서 생각보다 좋은 수익을 경험한 B씨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주식 차트와 기업을 분석하고 유튜버들이 이야기하는 외국의 경제 소식과 전망까지, 밤잠을 줄여가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이제는 무언가 투자의 감을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적금과 약간의 대출로 까다롭게 고른 기업에 투자했고, 예상대로 주가는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즐거웠던 날들도 잠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과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등에 대한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주가는 급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예상과 다른 흐름에 불안했지만, 이미 수익을 보고 있던 터라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반등하는 것 같았던 증시는 다시 푸른색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급락하기 시작한 증시는 회복할 줄 몰랐고, 결국 불안해진 B씨는 그동안 투자했던 주식을 모두 매도하고 손실을 확정 짓고 말았습니다.

서로 달라 보이는 이 두 가지 사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을 싫어합니다. 뭔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 알 수 없는 미래, 어떤 선택을 해야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불안합니다. 심지어 위의 두 사람처럼 불안보다는 확정된 실패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마음은 균형이 중요합니다. 논리와 감성, 이상과 현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남을 위한 희생과 나를 위한 시간, 온전히 남을 탓할 수도 내 잘못도 아닌 일들, 그런 모호한 경계를 가진 문제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우리 마음은 항상 고군분투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삶 속에서 한번 균형을 찾았다고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늘 새로운 균형을 찾아 줄다리기를 해야만 합니다. 확정될 수 없기에 균형은 모순적이게도 불안을 가져옵니다.

진학, 시험, 취업, 누군가와의 만남. 새로운 경험과 성장을 위한 관문에서 우리는 늘 한 단계 불안을 넘어서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변화를 앞두고 불안하신가요? 불안하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기꺼이 불안을 선택한 당신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팔호광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심리툰 작가

*A, B의 사연은 여러 이야기를 혼합하여 사연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각색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